[특별기획] 언론이 해야 할 일, 해선 안 될 일
[천안신문] 지난 한 주 박경귀 아산시장의 국외출장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과 지역 시민단체인 아산시민연대가 규탄 성명을 낸데 이어 민주당 소속 시의원 일동이 지난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국외출장 중단을 압박했다.
박 시장은 이런 목소리가 내심 불편한가보다. 지난 16일 오전 아산시의회 제248회 임시회 본회의 후 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기자에게 "시민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쏘아 붙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박 시장 측근을 취재원으로 해서 이번 국외출장이 재판을 미룬 것이 아니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 보도는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가 박 시장을 과도하게 흔들고 있다며 언론이 언론다워야 하며, 시민단체가 시민단체다워야 한다며 ‘친절히’ 훈계하기도 했다.
참으로 우스우면서도 슬픈,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웃픈’ 광경이다. 선출직 시장은 시민을 무시하며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이를 훈계해야 할 언론은 엉뚱한 곳에 '헛발질'을 해대고 있으니 말이다.
지역언론도 언론이고, 따라서 언론이 지켜야 할 원칙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공정'이다. 언론은 어느 쪽에도 치우쳐선 안 된다. 갈등하는 두 당사자의 목소리를 치우침 없이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의 원칙은 제한조건이 따른다. 바로 갈등하는 두 당사자가 대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박경귀 아산시장은 아산시에서 가장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39만 아산시민 모두가 각자의 시선을 갖고 있겠지만, 시민과 박 시장이 대립할 경우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공정'이 성립한다. 왜냐면 시민의 힘과 박 시장의 힘이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보다 쉽게 풀이하면 39만 아산시민 모두가 반대 목소리를 내도 박 시장은 이를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늘 그렇게 해왔다. 앞서 적었듯 박 시장은 아산시에서 가장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자여서다.
박 시장 입장을 전하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박 시장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건 분명 언론으로서 문제가 있다.
객관성 함정에 빠진 ‘일부’ 언론
한 번 따져보자. 박 시장과 일부 측근은 박 시장이 재판일정을 미루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정말 '미루다'의 사전적 의미만 따지면 박 시장 측 말이 맞다. 그러나 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박 시장의 피고인 신문일인 6월 4일은 1심 선고가 나온지 딱 1년을 맞는 날이다. 지난해 6월 5일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는 박 시장에게 시장직 상실에 해당하는 150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고, 이후 2심 역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올해 1월 대법원이 파기환송 하면서 다시 재판이 열려 지금에 이르렀다.
시민들이나 공직자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볼까? 적어도 파기환송 전 기자가 만난 시민들은 시장직을 잃을지도 모를 박 시장의 거취에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법원 판단 이후 기류가 살짝 달라졌다. 업무를 마치고 귀가 도중 택시를 이용했는데, 이 택시기사는 대뜸 "박 시장 판결은 임기 다 끝나고 나오겠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 택시기사의 심경이 전체 아산시민을 대변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는 택시운전사의 특성상 밑바닥 민심이라 봐도 좋겠다는 판단이다.
이렇게 시민들은 박 시장의 거취가 속히 정리되어 안정적으로 시정에 임하기 원한다. 미루어 짐작컨데, 아산시청 공직자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적어도 이런 와중이라면, 박 시장은 출장일정이 이미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속히 재판에 임하는 게 선출직 공직자로서의 도리 아닐까?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둔다. 기자는 박 시장의 국외출장에 크게 분노했다. 첫째 신속히 재판이 종결돼 거취를 정리해야 함에도 국외출장을 내세워 기일을 자꾸 늦추는 데 분노했고 두 번째 '전국평생학습도시 세종·충남대표로 간다'고 박 시장이 거짓말한데 분노했고, 셋째 국외출장도 실효성이 의심되는 정황이 계속 확인되는 데 분노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수차례 보도했으니 세 번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박 시장의 일본 하마마츠시 방문은 상호문화도시 교류협력사업 벤치마킹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아산시는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박 시장이 하마마츠시 부시장과 다문화정책 담당 부서 실무자와 만난다고 적었다.
얼핏 보아도 방문의 격이 맞지 않고, 따라서 굳이 시장이 가야하나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이미 기자는 여성복지과 김은경 과장과 만나 국외출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굳이 시장이 가야 하나, 실무자를 보내도 되지 않느냐는 견해를 전했었다.
여기서 박 시장과 측근에게 묻는다. 한국 아산시장이 뭐가 부족해서 일본에 가서 한 직급 아래인 부시장을 만나야 하나?
경제 어려운데, 박경귀 시장 ‘흥청망청’ 세계일주
게다가 아산지역 경제는 얼어붙었다. 기자가 만난 60대 시민은 "천안에서 나서 아산에서 쭉 살아왔는데 살아오면서 이렇게 경제가 어렵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라고 털어 놓았다.
삼성전자는 아산시에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관내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삼성 디스플레이가 그나마 실적이 좋아 세수 부족분을 채워줬지만, 앞으로 이렇게 계속 '운'이 좋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이런 와중에 박 시장은 시비를 들여 일본과 북유럽 3개국으로 떠난다. 과연 이게 사리에 맞는 일일까?
언론은 어떤 경우라도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최고 권력자에 대해선 예외규정 적용이 가능하다. 선출직 공직자가 재판도 '미루고' 격에도 맞지 않는 방문을 한다면 당연히 언론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선출직 공직자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거짓말을 한데 대해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 가는데 시민혈세로 출장가는 데 대해서도 질타해야 한다.
언론으로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당장 감정회로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자가진단부터 해야 할 일이다. '박 시장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느니 기사에 감정이 실렸다느니 하면서 훈수 두는 건 아무리 점잖게 말해도 여론 왜곡이다.
혐의 빠져나가겠다고 조력자 공범 ‘엮은’ 박 시장
그리고 차차 자세히 보도하겠지만, 파기환송심에서 변호인 측은 집요하게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고 박완호 본부장·지역신문 A 기자·선거캠프 정책실장 B 씨 등을 공범으로 '엮는데' 성공했다.
검찰로선 난감한 일이다. 공소장을 근거로 1심 선고가 이뤄졌는데 공소장 일부를 변경하면 1심 판단 자체가 흔들리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추가증거제출과 공소장 변경 검토를 위해 기일을 한 번 더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공소장 변경이 변수가 될 수 있겠지만,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건 제한적이라는 게 법조인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여기에 박완호 본부장의 증인신문에선 박 시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증언이 이어졌다. 또 박 본부장 등 관련자를 공범으로 '엮은' 건 박 시장이 혐의를 빠져나가려는 의도임이 심리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심리에서 나온 증언은 곧 자세히 공개할 예정이다) 박 시장에게 '줄 선' 공무원들이 새겨보아야 할 지점이다.
최종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다만 재판의 흐름으로 볼 때 박 시장은 국외출장을 계획하기보다 재판을 속히 마무리지어야 하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한다. 박 시장 측 입장을 전달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를 전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박 시장은 얼마든지 자신의 목소리를 원하는 방식으로 낼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다.
39만 아산시민들의 목소리가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박 시장의 국외출장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는 시민들 역시 없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박 시장과 측근의 스피커 구실을 했다고 좋아할 사람은 박 시장과 측근들뿐이다. "일부 언론의 박 시장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고 쓴 기사를 자라나는 아산의 청소년들 앞에 당당히 읽어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렇게 자신한다면 계속 그렇게 쓰기 바란다.
이 글을 쓰는 기자라고 박 시장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해서 광고비 몇 푼 받아오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그러나 시민들을 생각한다면, 비록 아산시 시정방향과 맞지 않는 비판 기사를 썼다고 홍보담당관이 홍보비 지급을 중단하고, 공무원에게 자료요청을 하니 "언론 대응이 어렵다"는 식으로 푸대접을 당해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이 또한 블랙리스트 사건임이 자명하니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왜냐고? 그게 언론이 할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