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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㉓ - 키르기스스탄 ‘카드르바에바 엘리자’[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유학 온 ‘카드르바에바 엘리자’라고 한다. 내가 1년 전 전북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후 어느새 1년이 지났다. 나에게는 한국생활이 정말 재미있었고,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또 많은 경험을 해 봤다. 또 방학 때 아르바이트도 해 봤기 때문에 한국문화를 더 많이 알게 됐다. 내가 한국에 왔던 첫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친구들과 같이 와서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가 본 적이 없어서 한국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어딜 가든 항상 부모님이 옆에 계셨다. 나는 한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한국인의 정을 느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 전주까지 스스로 가야 했는데, 어떻게 갈지 몰랐고 한국말도 잘 못했다. 그때 어떤 착한 아저씨가 우리가 외국인 줄 알고 버스표를 사 주시고 버스까지 데려다 주셨다. 낯선 아저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셨는데, 자세한 설명도 해 주시는 등 따뜻한 마음이 감동적이어서 우리는 고마웠다. 나에게는 한국인의 정이라고 하면 ‘보살핌’ 이 생각난다. 사실 어떤 사람이 내게 과자나 주스를 사 주면 “나도 돈이 있는데, 왜 사 주는 거지?” 라고 하면서 싫어했는데, 이제는 한국인의 정 덕분에 내가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어! 외국인이야, 힘들겠구나”라고 하면서 과자나 주스를 사 준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어느 나라 사람? 유학생? 힘들지 않아? 음식은 어때?”라고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두 시간 정도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이 군대 가는 날이라서 우리한테 맛있는 케이크를 사 주고 “힘내세요!”라고 하면서 가버렸다. 우리는 감사했고 한편으론 아쉬웠다. 어느 날 내가 야간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는데, 손님으로 온 어떤 아저씨가 내가 외국인 줄 알고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는 자기의 딸을 너무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나에게 “혼자 한국에서 공부하고 밤새도록 알바도 하는데 힘들지 않아? 아이구~ 내 딸도 너처럼 힘든가 봐”라고 말씀하셨다. 아저씨는 딸이 자기 때문에 알바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힘들 때 옆에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눈물까지 흘리셨다. 나중에 웬일인지 나에게 2만 원을 내미셨다. 내가 안 받겠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그냥 받아! 내가 돈 주는 거 아니고 널 보고 딸이 생각나서... 멀리 있는 딸을 도와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파”라고 하시면서 계속 돈을 내미셨다. 그런데 아저씨의 마음이 슬퍼 보이고, 불안해 보여서 나는 그냥 아저씨의 마음을 받기로 했다. 그때는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아저씨의 얼굴은 냉정해 보였지만, 마음속은 따뜻해 보이셨다. 그 당시에 나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정이 많고 자상한지 알게 되었다. 누구나 낯선 곳에 가면 음식이 입에 맞을까, 안 맞을까? 걱정한다. 사실 나도 좀 그랬다. 한식을 생각하면 매운 것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우리 기숙사 식당의 음식은 거의 다 맵기도 하고 맛이 이상하기도 하다. 매운 김치, 매운 밥에다가 국도 매웠다. 나는 달콤한 음식을 잘 먹는 편인데, 매운 것은 전혀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 가서 라면이나 김밥을 사 먹는 날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뭐를 먹어도 빵이랑 같이 먹는데 한국에서 별로 먹지 못해서 고향 음식이 정말 그리웠다. 그래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식당은 바로 ‘김밥나라’였다. 배고플 때마다 김밥나라에 가서 참치 김밥을 자주 먹었다. 그런데 식당 주인께서 내가 매운 음식을 못 먹는 걸 알고 “한국에서는 특히 김치를 자주 먹는다. 한번 먹어 봐”라고 하시면서 김치 반찬이랑 같이 많이 주셨다. 왠지 나에겐 그 아저씨가 건네주신 김치가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한국 김치 맛에 익숙해지면서 뭐를 먹어도 김치가 있어야 밥을 먹게 되었다. 한국 식당의 특징은 다른 나라에 비해 반찬을 많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반찬을 무료로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먹고 싶으면 또 시켜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근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양념치킨이다. 한국에서 소고기가 너무 비싸서 친구들과 치킨을 먹으러 가곤 했다. 양념치킨도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맛있다. 한국은 날씨가 겨울에 정말 춥고 여름에 아주 더운 나라인 것 같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추운 겨울이었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나는 상의로 따뜻한 옷을 입고, 하의로 바지 두 벌을 입었는데도 추웠다. 그런데 어떤 한국 학생이 반바지에다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우~ 대단하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편하게 신는 운동화랑 슬리퍼를 좋아하게 되었다. 뭐를 입어도, 어딜 가도, 학교에 다녀도 편안한 운동화랑 슬리퍼를 신은 그런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나도 이제 이렇게 편안한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히히~~ 이런 식으로 나는 한국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나는 한국 여자들에게 화장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국인들과 같이 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화장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편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화장품 없이 밖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내가 1년 이상 살면서 화장하지 않은 한국인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이부터 할머니들까지 화장한 얼굴, 단정한 옷차림, 날씬하고 건강한 외모, 젊어 보이는 할머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한국 사람들은 학교, 시장, 회사, 편의점 가는 5분 정도의 시간 등 잠깐이라도 밖에 나갈 때 꼭 화장을 하고 나간다는 사실도 여기에 와서 알았다. 한국 화장품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짙은 화장을 하는 반면에 한국인들은 자연스러운 화장을 선호하는 것 같다. 나도 이제 “어~ 너 한국사람 같아” 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여러 동아리에 가 보았다. 동아리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친구들도 있었다. 그 동아리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윗사람이나 선배들을 존경하고 후배들을 보살피는 한국문화를 알게 되었다. 우리 동아리 팀에서 내가 막내였기 때문에 선배들이 나를 잘 보살펴 주었고 맛있는 것도 사 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밥을 먹었는데 선배들이 술을 마시고 싶어도 내가 돼지고기를 안 먹기 때문에 삼겹살집으로 가지 못하고 치킨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이런 선배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왠지 모르지만 제일 마음에 들었던 이벤트 중에는 4월 14일 ‘블랙데이’랑 11월 11일 ‘빼빼로데’가 있다. 화이트데이날 남자한테 선물을 못 받은 여성들은 4월 14일에 자장면을 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친구들과 모여서 자장면을 먹었다. 맛이 이상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먹는 모습이 너무나 웃겼다. 11월 11일에는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할인을 받고 21,000원에 빼빼로 한 박스를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로 줬다. 내가 초콜릿 과자 같은 단 것을 좋아해서 나도 선물로 받고 많이 먹었다. 그날 내가 진짜 많이 먹어서 행복했다. 요즘도 손꼽아서 빼빼로데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 두 이벤트 때 친구들과 재미있게 보내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한국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뭐냐면 바로 ‘고객 서비스’이다. 한국에 있는 고객 서비스는 다른 나라에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든 뭘 하든 직원들은 고객한테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친절하게 인사하는 점이 특징이다. 처음에 나는 좀 창피해서 무뚝뚝하게 말을 안 했는데, 지금은 고개를 숨겨서 인사까지 하는 여유가 생겼다. 요즘도 가끔씩 어떤 사람한테 전화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할 때가 있다. 특히 화장품 가게나 은행에 갈 때 내가 외국인인 줄 알고 직원들이 천천히 말해 주고, 내가 못 알아들어서 짜증날 것 같은데도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설명해 주는 서비스가 감동적이다. 그리고 어떤 물건을 주고받을 때 두 손으로 주고받는 한국문화는 이제 나에게도 익숙해져 습관까지 됐다.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고 또 배울 것이다. 예를 들면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 수업 시간에 늦지 않는 것, 어떤 일을 맡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 특히 책에 대한 사랑, 한국인들은 어딜 가든 항상 커피랑 책을 들고 가는 것 등이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뿐만 아니라 서점, 커피숍이나 편의점에서도 공부하는 사람들, 부모들도 자기 아이랑 같이 공부할 시간을 가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공부할 때 열심히 공부하고, 즐길 때 재미있게 즐기고, 시간을 잘 지키는 한국인들의 생활 모습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말하면 말할수록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위에서 말했던 이야기들은 나에게 처음 있었던 일들이었고 내 인생에서 큰 경험이 되었다. 한국에서 스스로 생활해 보고 많은 경험을 쌓고 인생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한국 그리고 한국인 덕분이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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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㉒ - 브라질 ‘비프 밀레나’[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브라질에 있었을 때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한국을 알고 싶어서 2017년 1월에 한국에 왔다. 내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고 여기에 오기까지 약 40시간이나 걸렸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르다. 나는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와 다른 여러 상황을 경험했다. 예를 들면, 무엇을 먹을지 몰라 한국에 와서 첫 주에는 거의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게 보이는 모든 것은 매운 맛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브라질 사람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으니까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메뉴를 읽을 수 있었고, 식당에 가면 메뉴에 무슨 음식이 들어갔는지 물어 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 한 달 동안은 서울에 있는 고시원에서 살았다. 그런데 나는 그런 유형의 아파트를 브라질에서 본 적이 없다. 그때 한국에 1개월 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고시원은 좁았지만 한국어교육원과 가까워서 편리했다. 서울 강남에 있었을 때 나는 많은 관광 장소에 가 봤고, 다른 나라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있으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다시 브라질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가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같은 해에 정말 운이 좋아서 한국 정부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다시 한국으로 유학을 올 수 있었다. 드디어 2017년 8월에 천안에 도착했다. 그때는 더웠지만, 정말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했다. 공부 때문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가을이 되었고 시원한 날씨가 나타났다. 가을이 되었을 때 한국 민속촌에 가서 한국의 문화에 대해 많이 배웠다. 또한 그곳의 단풍이 아주 예뻤고 다양한 한국의 전통 공연도 봤다. 브라질에서 살았던 곳은 눈이 내리지 않아서 한국에서 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눈을 진짜 보고 싶었다. 어느 날 눈이 내렸을 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눈이 내리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눈사람을 만들었고 눈싸움도 했다. 그리고 겨울 학기 때는 우리 학교 친구들과 함께 롯데 월드에 갔다. 정말 재미있었고 토픽 시험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완전히 풀 수 있었다. 비록 지난겨울 동안 매우 추웠지만, 겨울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봄이 왔을 때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했다. 해운대 해수욕장, 자갈치 시장, 부산 감천문화마을, 용궁사 등을 구경했다. 봄이어서 부산에 벛꽃 축제가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거기에 가서 벛꽃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 맛이 정말 끝내 줬다. 브라질에서는 벚꽃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내 눈으로 그것을 봤을 때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2018년 5월에 친구들과 함께 정말 가고 싶었던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거기에서 한라산, 주상절리, 천지연 폭포, 정방 폭포 등등 아름다운 자연들을 많이 봤다. 그런데 한라산은 나에게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우리가 산을 오르고 있었을 때 날씨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더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산꼭대기에 올라갔을 때는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시설들이 정말 잘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여행하면서 봤던 대부분의 시설들은 잘 지어지고 잘 관리되고 있었다. 요즘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고 처음에 왔을 때보다 매운 음식도 잘 먹게 되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비슷한지, 또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공부할 때 세계의 언어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특별한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과 문화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 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하며, 앞으로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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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㉑ - 조지아 ‘안티즈 나나’[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이름도 생소한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 동유럽 남캅카스(코카서스 , Caucasus)에 위치한 ‘조지아’에서 온 ‘나나’라고 한다. 2017년에 한국정부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지금 선문대학교에서 한국어 과정을 밟고 있다. 몇 년 전에 처음으로 한국에 왔을 때 눅눅한 날씨로 시작했던 추억들이 아직도 새록새록 나곤 한다. 그 당시 두 달 동안 머물면서 멋진 친구들을 사귀었을 뿐만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추억도 만들었다. 9개월 만에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나의 미래 대학 생활이 어떻게 될까? 내가 한국어를 잘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공항 창밖을 내다보면서 새로운 꿈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약속을 나 스스로에게 했다. 처음으로 한국어를 배우면서 많이 서툴러서 의사소통도 잘 안 되었기에 매우 어려웠다. 특히 남들에게 나의 말실수를 보여주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학원 선생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매일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애정 어린 말씀을 해 주셨다. 그렇게 하면서 한국어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많이 생겨서 한국어의 아름다운 리듬감에 반하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면서 한국 문화는 물론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문화도 배울 수 있어서 날이 갈수록 수업이 재밌어졌다. 선문대에 다니면서 특별한 경험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문화 수업을 통해서 처음으로 한복을 입어보고, 선생님께서 절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날 우리는 한국의 전통 게임인 윷놀이를 하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에 선생님들과 유학생들 모두 같이 용인에 있는 한국 민속촌에 갔을 때이다. 여전히 서먹한 친구들과 한국의 전통 가옥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한국의 옛날 모습을 직접 구경한 것이야말로 정말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또한 매 학기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 반 친구들이 선생님과 함께 맛있는 한국 요리 수업을 진행했다. 모든 재료를 같이 준비하고 음식을 장만한 것은 우리의 우정을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그 수업 시간에 우리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한국 속담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았다. 그때 우리는 한국 사람들처럼 우리도 같이 공부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이 힘든 일을 이겨내고, 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서로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의 문화적인 지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문대에서 주최하는 수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 중의 하나는 작년 11월에 있었던 김장봉사였다. 대한적십자사의 도움으로 우리는 김치 담그기 과정을 경험했는데 고향에 있는 가족과 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국에 온 이후로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알제리’에서 온 유학생 덕분에 태권도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그녀는 태권도 선수라서 나에게 우리 대학에 있는 태권도 수업을 소개해 주었다. 운동을 잘 못했지만 태권도를 연습하면서 내 몸을 잘 관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물론 우리 모두 하얀 띠로 시작했고 선배님들처럼 검정 띠를 따고 싶었다. 아! 그런데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들 중 몇 명은 빨리 포기했고 나머지는 지속적인 근육 경련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태권도 동아리에 다니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선배님과 함께 국기원에 갔을 때다. 먼저 우리는 서울에 있는 올림픽 공원에 갔고, 저녁을 먹고 나서 국기원에서 태권도 시범을 관람했다.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날면서 싸우는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 또 지난 겨울에는 선문대 덕분에 롯데월드에 가서 반 친구들이랑 즐거운 추억을 만들 기회가 생겼다. 그날 우리가 얼마나 즐겁게 지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얼마나 많은 추억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갑자기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따뜻해져 이를 쉽게 잊지 못한다. 2018년에 최고의 경험은 단연 평창패럴림픽에 갔던 것이다. 올림픽 게임은 한국에서 가장 큰 행사였고 나는 그곳에 가는 기회를 얻어서 매우 행복했다. 그 스포츠가 어떤 드라마와 영화보다 스토리가 있고 여간 감동스럽지 않아서 우리 모두에게 감명과 영감을 주었다. 이렇게 한국에서 유학 생활 동안 경험한 일들을 다시 생각해 보면 힘들었던 것도, 즐겁고 행복했던 것도 결국은 다 매 순간 아름답고 잊히지 않는 황금 같은 추억들이다. 게다가 나는 한국어 공부뿐만 아니라 김치 담그는 방법도 배우고, 한복도 입어보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많이 학습하고 이해했다. 물론 한국에 올 수 있게 해 준 것은 한국 정부 덕분이고, 한국에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선생님과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이다.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해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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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⑳ - 말레이시아 ‘아흐마드 부르하니’[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흐마드 부르하니’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한국에서 공부하게 됐어요?”라고 물어 본 적이 있었는데, 사실 2년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해외 유학을 갔다 온 대부분의 친구들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서 말레이시아 친구들과 같이 유학을 한 반면에 나는 한국정부초청 장학생으로 혼자 유학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학생활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서 나는 너무 외로울까 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한국 뉴스와 TV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이 언제나 나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세계 여러 나라의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는 걸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저런 것들이 궁금해서 한국 유학에 도전해야겠다고 결정을 했다. 지금 나는 천안에 있는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에 다닌 지 9개월밖에 안 됐다. 그렇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이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좋은 추억도 있고 나쁜 추억도 있는데 나에게 모든 것은 아름다운 기억이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를 모르고 우리나라와 달리 한국 문화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국 생활이 어려웠다. 예를 들어, 어르신들이나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 존댓말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는 잘하지 못하는 바람에 답답했다. 그때는 노력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실수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외국인이라서 실수할 수 있고 한국 사람도 그런 경우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노력하는 한 언젠가 좋아질 거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어렵기는 하지만 선생님과 친구들 덕분에 이제는 한국어 실력은 물론 한국생활도 많이 익숙해졌다. 한국에 있을 때는 왠지 안전한 느낌이 든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착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어느 날에 커피숍에 갔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떤 한국 사람이 자리에 못 앉을까 봐 휴대폰을 탁자 위에 놓아두고 카운터에서 주문하는 것을 봤다. 처음에 봤을 때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주문한 후에 휴대폰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진짜 대단하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레이시아 사람도 이렇게 좋은 문화를 따라 하면 좋겠다. 나는 여행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20살 때부터 여러 나라에서 혼자 배낭여행을 많이 했다. 그래서 기회가 있거나 방학 때는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여행도 많이 하고 싶다. 작년 11월에 외국인 친구들이랑 제주도 여행을 갔다 왔다. 내가 말레이시아에 있었을 때 제주도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이번 여행을 얼마나 많이 기대했는지 모른다.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니까 등산을 했다. 나는 등산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말레이시아에서도 등산을 자주 해서 적절한 하이킹 장비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산과 달리 한라산은 아주 추워서 등산이 너무 어려웠다. 등산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완벽한 등산복을 입었다. 우리는 아침도 못 먹고 어려움을 무릅쓰고 투지를 갖고 정상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힘든 것을 이겨 냈다. 그래서인지 거기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눈물이 날 만큼 기뻤고, 제주도의 주변 경치가 여간 아름답지 않게 보였다. 게다가 산꼭대기에서는 너무 추웠기 때문에 눈이 내렸다. 말레이시아에는 겨울이 없으니까 여기에서 눈을 보자마자 추워도 흥분했다.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친구들이랑 아주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면 한라산을 다시 도전하려고 한다. 2018년은 대한민국의 해이다. 왜냐하면 평창에서 2018 동계 올림픽 경기가 열렸기 때문이다. 나는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동안 한국에 있어서 정말 운이 좋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교 덕분에 장애인 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대단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 선수들은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힘들어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줘서 나는 집중해서 보면서 진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어서 유학하고 있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나?”라고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포기하지 말고 어려운 것을 다 도전하고 더 열심히 하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한국에 온 것이 내 마음 속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것이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 덕분에 이 꿈이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3년밖에 안 남은 시간을 한국에서 열심히 살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들께 항상 사랑을 많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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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⑲ - 카자흐스탄 ‘몰다바예바 메루예르트’[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처음에는 한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카자흐스탄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렇게 내가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매혹에 푹 빠져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언어는 그냥 그 언어 자체만 공부하면 충분한 게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도 알아야 그 언어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어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전통과 생활 풍습 등 문화를 알아야 한국어를 더 깊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 문화를 빨리 체험하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교 2학년 때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 1년을 공부하는 동안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역사, 문학 등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얻었고 많은 체험을 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한국 정부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벌써 1년 가까이 선문대 어학당에 다니는 중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많이 사귀게 됐다. 사실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친하게 지낼 줄은 몰랐다. 각각의 나라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자라 온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준 곳은 바로 한국이다. 지금은 친구들과 같이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체험하려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양한 전통적인 축제들도 보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더 깊게 느끼고 있다. 카자흐스탄 속담에 “100텡게(카자흐스탄 돈)가 있는 대신 100명의 친구가 있어라”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에 와서 이런 친구들을 만난 것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에 온 사람들은 각각의 목적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한국어 배우기가 공통적인 목적이므로 빨리 친해지는 것 같다. 물론 친구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한테 친절하게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쳐 주고 계시는 선생님들께 늘 감사하다.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할 때 자기 모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로 공부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일상생활에서도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이해해 주시는 한국 선생님들이 계서서 정말 다행이다. 특히 이런 힘든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의 정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 한국은 기회의 나라이다. 한국에 와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모든 것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다. 나의 생활신조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요행을 부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분명히 언젠가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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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⑱ - 벨라루스 ‘바라웃소바 알렉산드라’[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동부 유럽에 있는 ‘벨라루스’라는 나라에서 한국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에 온 '바라웃소바 알렉산드라'이다. 한국에 온 지 벌써 8개월이 됐다. 우리나라에 있었을 때 얼마나 한국과 사랑에 빠졌는지 이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 4년 전에 벨라루스에 살았던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으로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한국의 문화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먼저 한국 드라마, 그 다음에 한국 음악, 언어, 드라마에서 보여 주는 생활 모습 등이 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볼 때마다 '이렇게 흥미롭게 보이는 한국을 실제로 가 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덕분에 드디어 한국에 유학생으로 오게 되었다.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 나는 한국 역사 드라마에서 예술 같은 한국의 풍경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벨라루스와 달리 한국의 풍경들은 밝은 색상이 가득해서 주변과 조화를 잘 이루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곳곳을 즐겨 여행하곤 한다. 예를 들어 경복궁, 창덕궁 후원, 한국 민속촌, 천안에서 있는 독립기념관 등등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내 마음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역사적인 장소뿐만 아니라 한국의 일상생활 풍경들도 아름답다. 그 중에서 한국의 재래시장은 아주 특별하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시장에 자주 가니까 그 곳이 일상적인 곳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장소이다. 그곳에서는 형형색색의 가게들을 구경하고 전통 음식을 맛보고 신선한 식품들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음식 그리고 외식 문화 한국에 오기 전에 나는 벨라루스에서 김치를 처음으로 맛봤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김치는 나에게 제일 맛있는 음식이 되었고, 매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올 때 나는 김치를 매일 먹으면 싫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 있는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이렇게 김치를 좋아하는 걸 보면 너는 전생에 한국 사람이었을 거야”라고 농담을 할 정도이다. 한국 음식에는 놀랄 만큼 벨라루스의 음식과 비슷한 요리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드라니기'라는 음식은 한국의 감자전과 거의 똑같은 음식이다. 그래서 가족이 그리울 때 감자전을 먹으면 마음이 위로가 된다. 또한 한국의 외식 문화는 나에게 정말 멋진 풍습으로 보인다. 벨라루스에서는 같이 밥 먹는 것에 특별한 뜻이 없다. 그런데 같이 밥을 먹는 것은 사람들 관계에서 같은 뜻을 가질 수 있는 걸 내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풍습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긴 지 4년이 되었고, 한국에 온 지 8개월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한국에서 살아 보니까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외식 문화뿐만 아니라 마음을 흔드는 음악, 친절한 사람들 등 다양한 이유들로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고 있다. 이제는 그 사랑이 짝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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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⑰ - 알제리 ‘쉬리피 나시마’[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지 벌써 9개월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제약 공학 박사 과정 학생일 뿐만 아니라 알제리 태권도 국가 대표 선수이기 때문에 매우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알제리에서도 운동은 물론 공부도 해야 해서 바쁘게 살아왔지만 지금은 한국어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더 바쁘게 살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15년 동안 태권도를 배웠는데 태권도의 종주국인 한국에 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국기원’하고 ‘태권도원’이 있는 한국에 정말정말 오고 싶었다. 그런데 드디어 2017년에 나의 꿈인 한국 방문이 이루어져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마음이 진짜 설레고 공감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먼저 어디에 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사랑하는 태권도의 본부가 있는 국기원과 태권도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서울 강남에 있는 국기원과 전라도 무주에 있는 태권도원을 방문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크고 재미있었고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이렇게 태권도 덕분에 처음으로 한국을 사랑하게 됐지만, 이제는 한국에 와서 다양한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으니까 여러 지역을 많이 구경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타워, 에버랜드, 남이섬 그리고 경복궁하고 다른 장소에도 가봤다. 나는 태권도를 하면서 한국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한국 문화 대해 아주아주 많이 배웠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식사 예절, 한국의 결혼과 설날 풍습 등 모두 관심이 많고 우리나라의 문화와 다르지만 재미있어서 너무 좋아한다. 한국에서의 모든 경험들이 기억에 남고 아름답지만 그중에서 평창에서의 경험이 최고였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나는 동계 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평창에 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 태권도 친구들이 평창 동계 올림픽의 봉사활동에 참여를 해서 나를 초대했다. 평창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개막식에 참석할 수 있어서 여간 행복하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서 정말 기뻤다. 나는 태권도를 배우게 되면서 처음으로 한국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한국에 와서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나서,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국 사람들의 정을 느끼고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지고 있다. 그리고 태권도를 알게 되어 내 삶이 많이 바뀌었다. 태권도를 통해 인내와 예의와 겸손 등을 배웠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이렇게 한국에까지 오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에 있는 동안 우리나라 문화도 소개하면서 더 많은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 또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즐겁게 한국생활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태권도는 물론 한국의 훌륭한 문화도 소개하면서 두 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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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⑯ - 우크라이나 ‘레브추크 알리나’[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의 이름은 알리나, 국적은 우크라이나, 한국 나이로 28살이다. 나는 작년 8월에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한국 땅을 드디어 밟았다. 선문대에서 외국인 장학생으로 초청을 해 주신 덕분에 현재 한국어교육원 고급반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꿈속에 그리던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드라마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일화 몇 가지를 사랑하는 나의 한국 친구들에게 들려드리고자 한다. 내 인생의 드라마에서 한국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한국에 오기 훨씬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 드라마앓이를 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한국 드라마 폐인’이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자마자 나는 한국 문화에 빠져들었고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문화적인 충격으로 크나큰 감동을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남녀 관계의 순수함에 깊이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사랑만큼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게다가 한국 드라마 속에서는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나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아무리 악인이라 할지라도 처절한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통해서 갈등이 해결된다. 이렇게 한국 드라마에는 인간다운 인간관계가 있었고 스스로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본받고 싶게 하는 힘이 있었고, 인간성 회복이라는 사회적인 메시지로 인해 큰 감동을 주었다. 마침내 나는 이처럼 정의로운 한국 사람들과 내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씀처럼, 그리고 나는 드라마처럼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한국에서 찍은 내 드라마를 들려 달라면, 나는 가장 따뜻했던 어느 추운 겨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유학 초기에 나는 한국말을 연습하기 위해 어떤 한국 아주머니에게 용감하게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도중에 그 아주머니께서는 친엄마처럼 다정하게 내 손을 꼬옥 잡고서 "한국의 겨울 날씨가 춥지 않으냐, 유학생활 힘들지 않으냐, 나이는 몇이나 됐냐? ······"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나에게 갑자기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엄마라니!! 당신이 내 엄마라고요?’ 나는 마치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나 만난 지 겨우 몇 분밖에 안 되었을 뿐인데 처음 본 낯선 외국인에게 엄마라고 부르라는 다정다감한 사람들, 그게 바로 한국인이었다. 멀리 유학을 와서 외로울 까봐 기꺼이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곁을 내어주신 아줌마, 그 분이야말로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진짜 엄마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지금 엄마가 두 명이다.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우크라이나 엄마도 사랑하지만 추운 겨울날 내 손을 꼭 잡아주셨던 한국 엄마도 나는 정말 사랑한다. 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속에서 한국의 자연과 경치는 또 어떠한가? 방학 때 바다가 보고 싶어서 한국 친구들을 졸라서 함께 여행했던 외도라는 섬을 결코 잊을 수는 없으리라! 내가 처음 만났던 바다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파도가 넘실대는 그런 바다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물이 거의 없이 검은흙만이 끝없이 펼쳐진 바다였다. 바다에는 썰물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이렇게 된다면서 한국어로 '갯벌'이라고 친구들이 알려주었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가 육지가 바다로도 변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마냥 신기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이 땅이 되었다가 땅이 하늘로 바뀌었다.’는 말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낮과 밤이 바뀌어야 새로운 날도 가능하고, 봄여름과 가을겨울이 계속 바뀌어야 새로운 계절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인생도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으로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물이 없는 한국의 바다와 갯벌덕분에 나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 밀물과 썰물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그 바닷가에서 나는 또 한편의 드라마를 찍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번데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미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곤충들을 먹게 되고 기아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세상에!! 어떻게 징그러운 곤충을 먹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여러 번의 망설임과 고민 끝에 '그냥 도전해 보자! 설마 죽지는 않겠지'라는 심정으로 눈 딱 감고 한번 먹어 봤다. 그런데 첫 냄새는 고약했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맛도 고소하고 괜찮았다. 게다가 실제로 먹어본 후에,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한국 속담의 뜻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징그럽게 보이던 번데기의 겉모습도 더 귀엽게 보였다. 이렇게 한국인들은 벌써 옛날부터 먹고 있었던 미래의 음식을 나는 먹어 보게 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 하나를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드라마 같은 나의 인생에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는 한국 오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드라마 촬영하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서 영화나 TV는 각종 정보는 물론 사람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대중문화도 경험할 겸 해서 드라마를 촬영하는 것을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너무나 빨리 들어주셨다. 마침 우리 선문대에서 '로봇이 아니야'라는 드라마를 촬영한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달려간 그곳에서 나는 드라마에서 자주 보았고 너무나 좋아하던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어를 좀 말할 수 있었지만 긴장한 나머지 “저는 알리나라고 합니다.”라는 말밖에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래도 다행히 사인 하나를 받아서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그토록 꿈꾸었던 한국에 와서 이처럼 놀라운 경험들을 하면서 날마다 행복한 드라마를 찍고 있다. 아직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드라마 같은 나의 인생에 대하여 한국 드라마 속의 그 아름다운 주인공들처럼 앞으로 ‘알리나의 행복한 드라마’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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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⑮ - 인도 ‘얄이니 베누고팔’[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내가 한국에 온 지 이제 8개월 지났다. 처음에는 유학생활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좀 익숙해졌다.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도 모르고 인도하고 문화가 달라서 아주 힘들었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24년 동안 숟가락과 손을 사용해서 음식을 먹었는데 한국에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금은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지만 한국에 오기 전에 "어떻게 이 스틱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천안에 온 후 처음으로 한국 식당에 가서 국수를 주문했는데 식당 아줌마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주셨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포크를 달라고 부탁했는데 식당 아줌마는 포크를 준비해 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젓가락 사용법을 전혀 몰라서 어쩔 수 없이 국수 한 그릇을 40분 정도 걸려서 먹어야 했다. 이런 일 때문에 창피해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젓가락을 사서 일주일 동안 젓가락으로 먹는 연습을 했다. 어려웠지만 계속 노력하니까 젓가락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 식당에 다시 가서 같은 국수를 주문했는데 이번에는 식당 아줌마가 나를 보더니 수저를 주시면서 포크도 같이 주셨다. 그런데 내가 포크를 쓰지 않고 젓가락으로 먹는 것을 보시던 식당 아줌마가 깜짝 놀라시면서 칭찬을 해 주셨다. 그때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뻤는지 모른다. 한국에 비하면 인도 사람들은 고기를 잘 먹지 않는 편이다. 특히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소고기를 절대 안 먹고, 돼지고기 먹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다. 반면에 염소 고기와 치킨을 즐겨 먹는다. 인도에는 채식주의자들도 많다. 나는 인도에 있었을 때 일주일에 한 번만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매일매일 고기와 생선 먹는 것을 꺼려했다. 그리고 어느 식당이든 대부분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이 많아서 친구들과 같이 외식을 할 때 아주 불편했다. 왜냐하면 한국어 말하기가 부족해서 정확하게 주문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니까 식당에서 주문할 때 고기를 빼 달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괜찮다. 인도와 달리 한국에는 사계절이 있다. 내가 한국에서 사계절을 다 보니까 각 계절마다 아름답고 흥미로운 풍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을과 봄을 아주 좋아한다. 그 계절에는 날씨가 좋을 뿐만 아니라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는 날씨가 아주 추웠지만 나는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봤던 첫눈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나는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여행을 하는 편이다. 그렇게 다양한 곳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문화도 배우고 추억도 많이 쌓고 싶다. 인도에 있었을 때 한국 영화 '부산행'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 가면 부산에 꼭 가 보고 싶었다. 때마침 지난번 봄 방학 때 부산으로 이사한 내 한국 친구한테 초대를 받아서 부산으로 2박 3일 동안 여행을 떠났다. 원래 그 영화에서 본 것처럼 KTX를 타고 싶었는데 표 값이 너무 비싸서 고속버스로 부산에 갔다. 그런데 좀비를 보지 못해서 좀 안타까웠다. 부산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친구 집에 짐을 놓고 바로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자갈치 시장은 해산물을 판매하는 유명한 곳이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다양한 해산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살아 있는 낙지를 너무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산낙지’를 파는 아저씨가 나에게 산낙지를 맛보라고 했는데 진짜 무서워서 먹을 수 없었다. 그 다음에 친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음식을 사려고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식당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사투리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 친구 덕분에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지만 부산 사투리가 한국말이 아닌 다른 언어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에는 해운대와 용궁사에 가기로 했다. 바다 구경도 할 겸 부산 아쿠아리움도 볼 겸 해운대에 갔다. 거기에서 사진을 많이 찍고 친구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나는 내 한국 친구에게 인도 음식의 맛을 알려주고 싶어서 점심을 먹으려고 해운대 근처에 있는 인도 식당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거기서 일하는 인도 사람의 모국어와 내 모국어가 달라서 어쩔 수 없이 한국어로 대화해야 했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한국말로 이야기하던 그 상황을 보고 내 친구들은 배가 아플 정도로 많이 웃었다. 보통 한국에 사찰이 산에 있지만 용궁사는 바닷가에 있으니까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거기에 가서 구경을 했다. 마지막 날에 태종대를 관광하고 오후 4시에 천안으로 오는 버스표를 예매하기로 했다. 태종대까지는 걸어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배로 갔다. 나는 전에 배를 타 본 적이 없어서 배표를 사기 전에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표를 살 수밖에 없었다. 근데 매표소 직원이 나한테 한국어 실력을 확인한다고 하면서 한국말로 대화를 시도했다. 내가 그 직원의 질문에 다 대답하자 그 직원 분은 나를 칭찬하면서 표 값도 할인해 줬다. 처음으로 배를 타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그 40분 동안 시원한 공기도 느끼고 아름다운 바다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다음에 한국 친구 집에 들렀는데 친구의 어머니께서 나를 위해 특별하게 떡국을 준비해 주셨다. 고향에 계신 우리 엄마가 음식을 만들어 주신 것 같아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인사를 드리고 천안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부산 여행은 여간 좋지 않았다. 기회가 있으면 다시 부산에 갈 것이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인종 차별' 문제가 있다고 들어서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 8개월 동안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다 친절한데다가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외국인들과 사귀거나 도움을 주는 한국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는 동안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즐거운 유학생활을 하면서 재미있는 추억을 계속 만들고 싶다. 또한 나도 한국 사람들한테 받은 사랑을 언젠가는 되돌려 줘야겠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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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⑭ - 불가리아 ‘네바다 미랴나’[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의 유명한 곳에 가고 있다. 작년 11월 19일에는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에 다녀왔다. 외국인 학생이라면 한국어 책에서 ‘전주비빔밥’을 배우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 친구가 전주에 가보자고 제안했던 순간에 한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바로 언제 출발하냐고 재촉을 할 정도였다. 전주에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전주에 대해 찾아보니까 “전주시는 전라북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도시로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감영 소재지로서 호남 지방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주는 문화 도시니까 내가 한국에 오기 전부터 가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KTX를 타고 전주로 갈 때 한국 친구와 함께 맛있는 고구마를 먹으면서 흥겨운 이야기를 했다.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파 바로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한국어 책에서 배운 속담이 떠올랐다. 아침 9시였는데 신기하게도 식당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전주에는 원래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어딜 가나 식당이 꽉 차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아침을 맛있게 먹은 후 먼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사진)을 모셔 놓은 ‘경기전’에 가기로 했다. 근데 어떤 특별한 행사를 하는 날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경기전 앞에는 태조의 복제 어진이 아닌 진짜 어진이 전시되고 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태조의 어진을 보니 600년 역사를 가진 어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다음엔 ‘전주사고 실록각’으로 들어가는데 "머리 조심하세요."라는 흥미 있는 문구가 붙어 있는 표지판을 보았다. 그런데도 그만 머리를 부칮치고 말았다. 바보처럼... 하지만 나갈 때도 머리를 또 부딪쳐서 친구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경기전을 둘러보면서 친구에게서 한국 역사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러고 나서 친구가 나에게 빼어난 경치를 보려면 ‘오목대’에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오목대는 언덕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오목대는 ‘태조가 잠시 머무른 장소’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려말 이성계가 전라북도 남원시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는 길에 일가친지를 불러 모아 놓고 잔치를 벌인 곳이라고 한다. 오목대에 올라가서 한참 경치를 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전주 향교를 구경하러 갔다. 전주 향교는 옛날 건축물로 그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전주 향교 뜰에 있는 은행나무의 노란 잎들이 절경이었다. 지금도 아름다운데 "옛날에 이 뜰에서 혼자 거닐었다면 분위기가 얼마나 평화로웠을까?"라고 생각했다. 전주에 가면 꼭 가보라는 하는 한옥마을로 들어갔다. 한옥마을에는 오래된 한옥들이 많은데 골목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복을 멋지게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깊은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길거리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특히 문어꼬치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전통 한식당에서 그 유명한 비빔밥을 먹었는데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 한참 한옥마을 골목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구경하다가 전주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이렇게 전주 여행을 마치고 KTX 열차에서 친구와 함께 한국의 매혹적인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에 다시 함께 할 한국여행 계획을 세웠다. 전주에서 본 많은 문화 유적이 인상적이어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전주에 언젠가 또 다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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