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립운동가’ 박인호 선생…전시회 개최

기사입력 2015.02.25 15:59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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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한 달간 수형기록표 등 14점 독립기념관 전시
    사진.jpg▲ 1년 8개월 만에 서대문형무소를 출옥한 선생의 기념사진. 사진 오른쪽에 ‘66세 출감초상(六十六歲出監肖像)’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천안신문]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박인호 선생을 2015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전시회는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3월 1일~31일 열리며, 박인호 선생의 수형기록표 등 관련자료 14점이 전시된다.
     
    박인호 선생은 1855년 2월 1일 충남 덕산군 장촌면 막동리에서 박명구(朴明九)와 온양 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83년 동학에 입교한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덕산 등지에서 농민군을 이끌었다. 1908년에는 천도교 제4대 대도주(大道主)로 임명돼 지방교구 설치 등 천도교단의 정비에 힘쓰는 한편, 재정운영상 어려움을 겪어 천도교단이 인수한 동덕여자의숙(同德女子義塾)․보성학교(普成學校) 등을 운영했다.
     
    1919년 3․1운동이 준비되는 가운데 선생은 천도교의 대표자로서 전국의 천도교 대교구에 등사 인쇄기 배치를 지시해 독립선언서와 격고문(檄告文) 제작을 지원했다.
     
    또한 천도교 대교당 건축 명목 등으로 성금을 거둬 3․1운동자금으로 제공하고, 독립선언의 전말을 작성한 ‘조선독립신문’을 발간해 3․1운동 소식을 널리 알리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3․1운동을 배후 지원하다 일경에 붙잡힌 선생은 1년 8개월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상하이와 베이징의 천도교 전교실(傳敎室)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운영자금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선생의 후원으로 1926년 6․10만세운동과 1927년 신간회의 결성과 활동에 천도교 출신 청년과 교인의 활발한 참여가 가능할 수 있었다. 1936년에는 일제 패망을 재촉하는 ‘멸왜기도(滅倭祈禱)’를 교단을 통해 지시했던 선생은 1940년 4월 자택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와 관련해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3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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