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의 정체성과 향후 역할

기사입력 2011.03.22 15:59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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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20 정상회의의 정체성과 향후 역할

    ▲ 하영일 고려대학교대학원 외래교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막을 내리면서 이제 ‘G20 체제의 미래’에 지구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G20은 1999년 독일에서 첫 회의가 열린 이래 매년 정기적으로 회원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회담하다가 2008년 9월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정상회의로 격상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한계를 느낀 G8이 신흥국까지 부른 임시 회의로 시작했다가 그간 4차례에 걸친 정상회의를 가지면서 G20을 통한 국제공조가 효과를 내자 연례 정기회의로 발전했다.


    G20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신속한 국제공조를 통해 세계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위기의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위기의 잔재가 남아있고, 선진국들의 성장 둔화와 재정문제로 인해 신흥국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중(美中) 간 갈등이 일본과 유럽 및 신흥국으로 번지며 ‘환율전쟁(currency war)’이 전 지구적으로 격화될 조짐을 보였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G20을 통한 글로벌 공조가 긴요하고, 국제협력의 틀을 계속 유지하려면 G20의 제도화(制度化)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회의를 계기로 G20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G20의 제도화 가능성이 모색될 것으로 점쳐졌다.


    그동안 주요 8개국(G8) 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G20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세계 주요 현안을 주로 G8과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이 해결해 왔지만 이들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사안과 이슈를 다루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G8만 해도 미국과 함께 ‘G2’라고 불리는 중국을 비롯해 인도 브라질 등 세계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머징(emerging) 국가와 다른 많은 중요한 나라들이 빠져 있다. 국제사회의 선진국 클럽으로 영향력을 유지해 온 G8은 글로벌조정위원회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역부족이고 UN도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G20이 다자(多者)기구로서 글로벌화에 따른 지구촌의 각종 핵심 어젠다를 토의하는 데 더 효율적인 체제라는 대체적인 인식이다.


    사실 G20은 국제협약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사무국 조직도 없는 포럼(Forum)에 지나지 않는다. 작년 9월 미국 피츠버그 제3차 회의에서 각국 정상은 G20을 국제 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협의체'라고 선언한 바 있으나, 강한 거버넌스(governance) 기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무국 등 상설 조직을 갖춰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 회의 때만 국제공조를 강조하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장 다비드 레비트 프랑스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은 “G20이 결정한 내용이 잘 이행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논의 결과를 확산시키기 위해선 G20 사무국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새 세계경제질서인 G20의 기능 강화를 위한 사무국 창설은 지난 8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제안했고, 한국은 정상회의를 유치하면서 사무국 설치를 중심으로 한 G20의 제도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G8이 확대된 G20이 세계 최상위 협의체로서 대표성과 효율성을 갖추기 위한 제도화가 합의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당장 현재 G7에 속하는 일부 G20 회원국들은 사무국 설치에 소극적이다. (기존 선진 G8 체제를 선호하는 일본과 이탈리아는 G20 제도화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프랑스는 본래 G20 체제에 부정적이었지만 차기 의장국으로 결정되면서 부쩍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회복되면 동기가 약화되어 G20 체제의 힘과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란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환율갈등이 첨예한 시점에서 열린 제5차 G20 서울 정상회의는 G20이 세계 경제 협의체로서 시험대에 오른 중요한 모임이었다. 이번 서울회의에서 글로벌 환율-무역 불균형 해소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다. 그러나 환율 문제와 관련해 이행을 담보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합의시한을 내년으로 넘긴 ‘서울 선언’은 그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환율 전면전은 멈추겠지만 국지전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서울회의는 국제통화기금(IMF) 개혁의 시발점이 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워싱턴 제1차 정상회의 때부터 핵심 사안인 IMF 쿼터 개혁 합의는 세계경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파워 시프트(power shift)’가 시작된 일대 지각변동이다. 선진국의 IMF 지분 중 6%와 유럽 국가들이 가진 이사직 9석 가운데 2석을 신흥개도국으로 이전하게 돼 중국 등 신흥국의 발언권이 강화된 것은 국제사회 힘의 구조가 점점 ‘다극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G20은 세계통합정부는 아니다. 하지만 선진국과 신흥국으로 성장한 주요 나라가 모여 글로벌 현안을 집중 논의할 수 있는 주체가 사실상 G20밖에 없다. 따라서 G20 회원국의 인구, 경제적 비중이 80%가 넘는 이러한 독특한 특징 때문에 G20 정상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이 세계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향후 G20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선 비(非)G20 국가들에 대한 포용 전략이 필요하다. 이들 비회원국들에게도 회의참석 기회를 주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 반영해야 한다. 지구촌이 직면한 난제(難題)를 해결하는 데는 선진국 및 신흥국과 개도국의 협력이 절대적이고, 세계 국가 간 개발격차가 계속 벌어지면 ‘지속가능하고 균형 있는 성장’은 불가능하다. 정치적 일탈을 최대한 억제하고 ‘글로벌 불균형 문제 해소’라는 근본적 의제에 초점을 맞춰 상생(相生)의 길을 찾는 노력이 G20의 존재 이유다. 개도국의 중요성은 점차 증가하고 있고 이들은 글로벌 경제에서 안전판 역할도 하고 있다. 이는 결국 G8과 비교했을 때 G20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G20은 G8과는 달리 신흥국도 포함돼 있는 만큼 미래의 G20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이슈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할 것이다. 금융위기에서 불 수 있듯 기후변화, 에너지, 기아 및 식량문제 등 국가 간의 상호 의존성이 큰 이슈들에 대한 협력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G20은 경제 문제를 넘어 글로벌 현안을 조율하는 세계기구로 발전하는 게 바람직하다. G20이 G8과 UN을 넘어 명실상부한 세계 최상위 협의체로 자리매김하려면 범지구 차원의 문제들을 책임 있게 다뤄야 하고, 그럼으로써 미래의 또 다른 글로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세계 각국은 G20을 중심으로 비교적 잘 협조해왔다. 서울 정상회의에서 핫이슈로 부상한 환율전쟁을 종식시킬 구체적인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지만 과거 대공황 시대 보호무역주의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로 회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공동인식이 확산되었고,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제공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재확인되었다. 경기회복으로 글로벌 경제 위기감이 줄어 G20의 존재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회의는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다루는 데 G20이 최적의 장(場)임을 보여주었다. G20의 가장 큰 의미는 좀 더 많은 국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세계 주요 현안을 논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는 데 있다. 앞으로 비(非)G20 국가들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NGO)도 참여해 더욱 포용적이면서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목표를 찾는 G20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질서 주도체제로서 G20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 G20이 지금까지 5차례 정상회의를 통해 합의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겨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협의체로서 G20 정상회의가 더 큰 국제적 신뢰를 얻는 기구로 안착하려면 기존의 선언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물론 세계경제 환경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도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일단 합의된 내용은 ‘법적 구속력’이 뒤따라야 한다. 합의사항을 개별 국가가 느슨하게 이행하거나 정확하게 준수하지 않으면 같은 위기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고, G20이 자칫 무기력한 국제협의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 G8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떨어진 것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놓고 나 몰라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기간 정상회의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G20 회원국의 요구와 글로벌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므로 상시적인 회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G20 의장국인 한국 정부는 글로벌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핵심 포럼으로 G20의 역할 및 가치가 확대돼야 한다는 판단아래 서울 정상회의 때 G20의 제도화 필요성을 제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환율분쟁 등 다른 주요 이슈에 각국의 시선이 집중되다보니 연속성 있게 의제를 챙겨줄 상설사무국 신설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시적 협의체로 출발한 G20 정상회의가 향후 국제무대에서 순항하고 의미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합의 이행을 감시하는 장치 마련과 제도화를 통한 정체성 확립이 관건이다.

    "이 칼럼은 지난해 말 G20 서울 정상회의 직후에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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