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칼럼] 소통, 그것이 문제다

기사입력 2022.10.07 08:46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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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윤 논설위원.

    [천안신문] 번역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자구(字句) 한 자 한 자, 단어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일이다. 

     

    하나의 예로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을 들어 보겠다. 이 말은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즉 죽은 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의(司馬懿)를 달아나게 했다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에서 나왔다.

     

    <(…) 사마의는 정탐을 나갔던 하후패에게서 정보를 듣는다. "촉군이 군사를 물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마의는 무릎을 치며 말했다. "과연 공명(제갈량)이 죽었구나. 이를 놓치지 않고 얼른 쫓아가서 격퇴해야 한다."

     

    사마의는 몸소 군의 선두에 서서 촉군을 추격했다. 그 순간, 도망치던 촉군이 피리와 징을 울리며 되돌아섰다. 그리고 한승상무향후제갈량(漢丞相武鄕侯諸葛亮)이라는 깃발까지 보였다. 사마의는 속임수겠지! 라고 생각하며 촉군을 휘둘러보니 과연 제갈량이 수레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걸 보자 사마의는 기겁을 하며 외쳤다. 

     

    "너무 서두르다가 이런 화를 당했구나! 얼른 퇴각하라!" 그 소리에 위군이 혼란에 휩싸인 채 퇴각했다. 사마의가 너무 정신없이 도망치자 뒤따라온 하후패가 말했다. "진정하십시오. 충분히 멀리 왔습니다.">

     

    이상은 촉나라의 공명과 위나라의 사마의가 오장원에서 대치하던 중 있었다는 일화다. 공명이 식소사번(食少事煩) 즉 일은 많은데 음식은 적게 먹은 관계로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는 사실을 사신이 하는 우연한 말을 통해서 사마의가 알게 된다. 

     

    사마의는 공명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전투를 피하면서 지구전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별을 관측하던 대사관으로 부터 장수성(將帥星)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는다. 사마의는 이 보고를 바탕으로 공명이 드디어 죽었다고 믿고 공격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공명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미리 장수들에게 자신이 죽은 뒤 사마의의 추격을 뿌리칠 방법을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사마의가 공격을 해 올 경우 자기 모습을 본뜬 좌상을 만들어 수레에 앉혀 실어서 지휘하는 것처럼 보이라는 조치를 취하고 황제 유선에게 편지를 보낸 뒤 막사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54세다.

     

    이 고사를 소개한 이유는 번역상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이라는 글자만 보고 이글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즉 사공명(死孔明)을 죽은 공명으로, 도(走)를 뛰어가면서, 중달(仲達)을 사마의 중달로 생(生)을 낳다, 로 해석 하면 “죽은 공명이 뛰어가면서 사마중달을 낳다”가 된다. 

     

    이 해석은 글자 그대로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좁은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틀렸다고 볼 수 없는 번역이다. 그러나 이 글을 바르게 번역 하려면 이 고사에 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한다. 즉 공명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지식과 남자이기 때문에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백번을 양보하여도 죽은 남자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고 이치에도 어긋나는 말이다. 더구나 어떻게 뛰어가면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인가? 중달 사마의에 관한 사전 지식도 필요하다. 그래야 바르고 옳게 번역할 수 있다. 즉 중달 사마의는 적국의 책사요, 군사지휘자이지 제갈 공명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바른 번역을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례를 통해서 끌어낸 결론은, 첫째 번역은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번역은 스토리에 관한 역사적인 지식도 겸비해야 한다. 셋째 모든 번역은 자구에 매달리면 안 된다. 

     

    넷째 전체의 의미나 맥락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자구 해석에 있어서의 차이는 용인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함축적인 수사는 얼마든지 다른 표현과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비근한 예를 든다면 문해율과 관련된 문제다. 문자해득율(文字解得率)은 글자를 읽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실질적 문해율이란 한 사회에서 문서를 읽고 그 의도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구성원의 비율이다. 이는 단순히 글자를 읽고 소통할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을 말하는 문맹률(반의어 문해율)과는 구별된다. 이 능력이 낮은 것을 실질적 문맹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가제((假題, working title) 즉 임시로 붙인 제목)’란 단어의 뜻을 몰라서 ‘로브스터(갑각류 가재)’라고 답하는가 하면 “금일은 금요일 아닌가요?”, “사흘은 4일 아니었어요?”라는 오류는 이미 SNS에서 화제가 된 단어들이다. 오늘을 뜻하는 ‘금일(今日)’은 금요일의 줄임말로 착각하고, 3일을 뜻하는 우리말인 사흘은 4일로 착각해 4흘로 표기하기도 한다.

     

    만일 실질적 문해력이 떨어진다면 외부의 정보를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다. 나아가 깊이 있는 정보를 주고받을 수조차 없게 된다. 더욱이 광고나 정치 선전에 쉽게 정신을 빼앗길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읽는 수밖에 없다. EBS <당신의 문해력>에서 실시한 성인 문해력 설문 조사 결과 문해력 향상을 위한 대안 역시 ‘꾸준한 독서’(48.5%)가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신문 기사 정독’ (22.5%)이 제시된 바 있다. 

     

    2008년 국립국어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약 1.7%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하지만 성인 5명 중 한 명이 문해력이 낮아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래서 문해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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