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선거 막판 난무하는 무차별 의혹제기, 허용 기준점은 어디에?

기사입력 2023.08.01 15:04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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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위사실 공표 아닌 의혹제기’ 항변 박경귀 아산시장, 정작 근거는 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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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9일 오후 박경귀 아산시장이 대전고법에 출석하고 있다. 박 시장은 이날 열린 항소심에서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천안신문] 선거 막판 과열양상에서 난무하기 일쑤인 후보자들의 상대 후보에 대한 의혹제기는 어느 수준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박경귀 아산시장 재판을 지켜보면서 드는 의문이다. 지난 7월 19일 오후 대전고법에서 열린 박 시장 항소심 심리에서 박 시장은 '허위사실 공표'가 아닌 상대 더불어민주당 오세현 후보에 대한 '의혹제기'라고 항변했다. 

     

    "추호도 허위사실을 공표한 적이 없다. 단지 의혹을 낱낱이 해명하라는 데 방점이 찍혔고, 실제로도 그랬다. 성명서 내용을 읽어보면 전체 취지를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는 게 박 시장의 항변이었다. 

     

    박 시장은 1심에서 벌금 1500만원 형을 선고 받은 상태다. 1심 재판부인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전경호 부장판사)가 박 시장에게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근거로 삼은 건, 공직선거법 제250조 2항이다.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후보자,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관해 허위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와 허위의 사실을 게재한 선전문서를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게 내용이다. 

     

    항소심에서 박 시장 측 변호인은 1심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했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 측 이동환 변호사는 "해당 조항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제한을 담은 형벌조항으로서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는 데 엄밀하게 고려해 (정치적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신중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상대 후보자에 대한 이력 등 정보를 얻기 위한 적극적인 공방 과정에서 빚어진 것인데, 후보자가 상대를 향해 '허위 아니냐?'는 수준의 공격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보다 다양한 논쟁을 유도하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후보자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막힌다. 이는 자유민주적 선거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주권자 국민에게 손해가 돌아간다"고 강변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선거운동의 자유, 정치적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 허위사실 유포는 특정 후보자가 어떤 사실을 적극적으로, 일방적으로 널리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가 있어야 하는 데 박 시장은 확정된 사실관계 공표한 게 아니다"며 무죄를 선고해 줄 것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기자는 박 시장 측 항변이 타당한지 따져보고자 1심 판결문을 입수했다. 또 이 사건의 발단이 된 보도자료·성명서도 다시 들여다봤다. 

     

    “허위사실은 판단을 그르치게 할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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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9일 오후 박경귀 아산시장이 대전고법에 출석하고 있다. 박 시장은 이날 열린 항소심에서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먼저 문제의 보도자료·성명서에서 박 시장(당시 후보)은 상대 오 후보 원룸허위 매각 의혹을 꺼내면서 "소유권이 이전된 날 관리신탁이 되었다는 점, 매입한 등기인이 오 후보의 부인과 성이 같은 윤 모씨라는 점 등을 미뤄 봤을 때 시민의 입장에서 허위 매각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오 후보는 풍기역지구 부인 토지 셀프 개발 추진 의혹과 더불어 해당 문제에 대해서도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며 소명해야 할 것"이라며 오 후보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 대목까지만 보면 의혹제기라는 박 시장 측 주장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박 시장은 오 후보가 해당 건물을 매입한 시기를 2018년도 8월 21일로 특정했고, '아산시 온천동 1**-*** *동'이라고 주소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뿐만 아니다. 보도자료·성명서에 해당 건물을 찍은 사진까지 첨부했다. 

     

    비록 박 시장 측이 의혹제기라고 하지만 1) 원룸 건물 매입시기 2) 구체적 주소 3) 건물 사진 등을 첨부한 점은 의혹이 사실에 근거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 박 시장 스스로도 보도자료·성명서에서 "문제 제기에 한 점 허위도 없다. 공직자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관련 대법원 판례를 들면서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에서 정한 ‘허위사실’이라 함은 진실에 부합하지 않은 사항으로서 선거인으로 하여금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가진 것이면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선거운동 자유는 어느 지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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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아산시장이 무죄를 강변하는 가운데, 대전고법은 오는 25일 오전 2심 선고를 예고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선거운동의 자유, 정치적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박 시장 측 항변은 보다 면밀히 따져볼 지점이다. 비록 오 후보 원룸 허위매각 의혹을 담은 보도자료·성명서가 사법심사 범위에 포함됐지만, 박 시장은 선거 막판 네거티브를 말 그대로 쏟아냈다. 

     

    박 시장의 네거티브는 2022년 5월 22일 시작해 26일과 27일 정점에 올랐다. 아래는 박 시장 측이 낸 보도자료 목록이다. 

     

    1. 민주당 오세현 후보는 부인 토지에 수십억원대 가격 폭등 안겨줄 '셀프 개발 추진 아산판 대장동' 의혹을 낱낱이 해명하고 시민 앞에 사죄하라 (2022.05.22.)

     

    2. 박 후보 "오세현 후보 LH사태 때 원룸건물 허위 매각 의혹도 짙어” 빗발치는 부동산 비리 의혹...이래도 네거티브냐 (2022.05.26)

     

    3. 박경귀, 허위사실 공표로 오세현 후보 고발 (2022.05.26.)

     

    4. 박경귀, 풍기역지구 개발 적극 찬성...감사원 고발 조치 등을 통해 오세현 후보 부동산 의혹 끝까지 밝힐 것 (2022.05.27.)

     

    5. 박경귀, 풍기역지구 도시개발 환경평가 부동의...오 후보 몰랐으면 무능, 알았으면 셀프 개발 (2022.05.27.)

     

    6. 박경귀, 이기는 상황에서 없는 네거티브 할 이유 없어...시민의 알권리 보장 (2022.05.27) 

     

    7. 오세현 후보 측의 조직적 네거티브 선거 움직임 포착...정책선거하자더니 뒤로는 허위사실 유포에만 열 올려 (2022.05.28.)

     

    문제는 박 시장 측의 네거티브가 효과를 발휘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먼저 6.1지방선거 당시 아산시 최종 투표율은 44%로 50%선에도 미치지 못했고, 지난 선거 대비 10%p 하락했다. 네거티브가 ‘먹혀 들어간’ 정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전반적인 선거 판세가 박 시장에게 유리했다고 볼 수 없었다는 아산 특유의 정치지형이었다. 84일 전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당시)가 승리했다. 특히 충남은 윤 후보에게 몰표를 줬지만, 아산에서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박 시장 본인의 후보 경쟁력도 의문이었다. 아산시장 후보경선에서 박 시장은 정치신인 전만권 전 천안부시장과 피 말리는 접전을 펼쳤다. 특히 전만권 전 부시장 측이 이교식 후보와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자 박 시장은 자당 후보를 향해 이례적으로 "정치야합이자 희대의 사기극“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2022년 5월 우여곡절 끝에 박 시장은 전 전 부시장을 누르고 국민의힘 아산시장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하지만 경선결과 박 시장 56%, 전 전 부시장 52.78%로 득표율 차이는 불과 3.22%p에 불과했다. 경선 1위임을 자처했던 박 시장으로선 정치신인인 전만권 전 부시장과 박빙의 승부를 펼친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박 시장으로선 지방선거 낙선 시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 시장이 선거 막판 네거티브로 치달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1심 재판부도 “당시 모 기관 여론조사 결과 오 후보 44.9%, 박 시장 32.5%로 오 후보가 앞서고 있었으나, 당시로서는 선거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무렵 배포된 이 사건 성명서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오 후보자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 당시 박빙이었던 선거 판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한편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성명서가 작성·배포될 때까지 이 사건 건물의 매각과 관련해 박 시장 측이 보유했던 객관적인 자료는 이 사건 건물에 대한 부동산등기부등본과 신탁 원부에 불과하고, 다른 자료를 확보한 정황은 찾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법원 전산망을 통해 확인한 바, 1일 오후 3시 기준 시점까지 박 시장 측은 추가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중이다. 

     

    박 시장의 무죄 항변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몫이다. 다만 분명한 건 박 시장이 무분별한 네거티브로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렸고, 1심 재판부도 이 점을 유죄 선고의 유력한 근거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1심 재판부 판단은 향후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예비 정치신인에게 중요한 이정표라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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