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칼럼] 의리와 지조 그리고 기개는 어디서 오는가?

기사입력 2023.09.30 08:19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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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윤 논설위원.(단국대학교 전 법학대학장)

    [천안신문] 사기 자객열전에 보면 예양 선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양(豫讓)이라는 선비는 진나라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를 주군으로 모시고 받든 적이 있다. 하지만 예양은 오래지 않아 그들을 떠났다.

     

    그리고 만난이가 지백(智伯)이다. 지백은 그를 매우 존경하고 남다르게 아꼈으므로 예양 역시 주군으로 모시고 신하의 예를 다하였다. 

     

    그러나 지백이 조양자(趙襄子)자가 다스리던 나라를 침범하자, 조양자는 한씨가 다스리던 나라와 위씨가 다스리던 나라와 연합하여 지백을 멸망시켰다. 뿐만 아니라 지백의 후손까지 모두 죽여 버렸다.


    그리고 지백이 다스리던 땅을 삼등분하여 한씨와 위씨 그리고 조양자가 나누어 가졌다. 이도 모자라 조양자는 지백에 대한 원한이 큰 나머지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요강으로 썼다고 한다. 지백의 신하 예양은 산으로 달아났다. 그런 위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조양자에 대한 원한을 더욱 키웠다.

     

    도망 중에도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겼다. 이 말을 풀어보면 “아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예뻐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가꾼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그는 깊은 산속으로 도망을 하면서 지백 주군께서는 이 못난 나를 알아주었다. 나는 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반드시 주군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이 몸이 죽어서라도 지백주군의 원수를 갚아 은혜로 보답한다면, 내 혼백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도망에 성공한 예양은 성과 이름까지 바꾸었다.

     

    지백은 원수를 갚기 위하여 조양자가 사는 궁궐로 들어가기 위하여 범죄를 저지른 후 죄수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양자가 사용하는 궁궐화장실의 벽을 바르는 일을 자청하였다. 그는 지백의 숙적 조양자를 살해하기 위하여 몸에 비수를 품고 때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조양자가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예감이 이상하여 주위를 살피던 중 화장실의 벽을 바르는 죄수가 수상해보였다. 그는 그를 잡아 조사해보니 그가 바로 지백의 신하 예양이었다. 

     

    그가 몸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은 비수였다. 조양자는 깜짝 놀라 왠 비수냐고 추궁하자, 예양은 망설이자 않고, “지백을 위해서 원수를 갚으려는 비수요.” 그 말이 나오자마자 조양자 주위에 있던 신하들이 예양을 단칼에 처단하려고 움직였다.

     

    이를 본 조양자가 말했다. “그는 자기가 섬기던 주군의 원수를 갚으려던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조심하여 피하면 될 뿐이다. 더구나 지백은 이미 죽고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이을 후손조차 없다. 그런 주군을 위하여 신하로서 목숨을 담보로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으니, 이 사람은 천하의 현명한 인간이다.” 조양자는 그의 죄를 묻지 말고 풀어주도록 하였다.

     

    자유의 몸이 된 예양은 주군의 원수를 갚겠다는 신념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 이번에는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처럼 꾸미었을 뿐만 아니라 숯을 삼키어 벙어리처럼 행세 하였다. 이 모든 행동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위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변장을 한 그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걸로 연명 하면서까지 주군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얼마나 완벽하게 변장을 하였으면 그의 아내까지도 예양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한번은 예양이 친구를 찾아가 만났다.

     

    그 친구만은 예양을 알아보고 말했다. “자네는 예양이 아닌가?” 예양이 대답하였다. “그렇다네, 나일세.” 친구는 울면서 말했다. “그대의 재능으로 예물을 바치고, 조금만 조양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신하로서 예를 다한다면, 양자는 틀림없이 자네를 가까이하고 총애할 것일세. 그가 자네를 가까이하고 아끼게 된 뒤에 그를 암살하려는 의도를 실행에 옮긴다면 생각보다 일을 쉽게 성사 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찌 자기 몸을 혹사 하면서까지 조양자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가!”

     

    이에 대하여 예양이 한 말은. “이미 예물을 바치고 남의 신하가 되어 섬기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살면서 자기 주인을 섬기는 일일세.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은 아닐세! 그러나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일을 하려는 이유는 장차 천하 후세의 사람 중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주군을 섬기지 않아야 된다는 교훈을 주고자 함일세.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염치를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일세.” 그 말을 한 후 예양은 친구와 헤어졌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양자가 외출을 하려고 하였다. 이를 알아낸 예양은 조양자가 자나가려는 다리 밑에 잠복해 있었다. 조양자가 막 다리를 건너려고 할 때 갑자기 말이 놀라 울었다. 조양자는 직감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는 틀림없이 예양 때문일 것이다.” 조양자가 부하들을 시켜 주위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예양이 숨어 있었다.

     

    이에 조양자는 예양을 꾸짖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행씨를 주군으로 모시고 섬기지 않았는가? 지백이 그들을 다 멸망시켰지만 그대는 그들을 위해서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지백에게 예물을 바쳐고 그의 신하가 되었지 않는가! 이젠 지백도 이미 죽었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유독 지백만을 위하여 원수를 갚겠다고 하는가?” 

     

    이에 예양이 말했다. “저는 범씨와 중행씨를 주군으로 섬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범씨와 중행씨는 모두 저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하였습니다. 저도 역시 보통 사람으로써 그들에게 보답하였습다.그러나 지백은 저를 한 나라의 최고의 선비(國士:국사 온 나라에서 재주가 특별히 뛰어난 선비)로 대우하여 주었습니다. 저 또한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조양자는 탄식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 예양 그대여! 당신이 지백주군을 위하여 충성과 절개를 지켰다는 이름은 벌써 이루어졌네, 과인 또한 그대에 대한 용서도 이미 충분히 했네, 따라서 그대는 스스로 살 계책을 세움이 마땅할 것이나, 나는 더 이상 그대를 놓아 주지 않을 것이네!”

     

    조양자는 병사들에게 그를 체포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예양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현명한 군주는 남의 미덕을 감추려 하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명분을 위하여 죽을 의리가 있다고 합니다. 전날 주군께서 저를 너그럽게 용서한 일로 천하 사람들이 당신의 현명함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의 일로 저는 진실로 죽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청컨대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베어 마지막으로 원수를 갚으려는 뜻에 이르도록 해주신다면, 비록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감히 바랄 수 없는 간청이겠지만, 감히 제 마음속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조양자는 예양이 매우 의롭다 여긴 나머지 사람을 시켜 자기 옷을 예양에게 가져다 주도록 하였다.

     

    예양은 칼을 뽑아들고 세 번을 뛰어올라 조양자의 옷을 공격하면서 말했다. “이로써 나는 지백주군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었다!” 예양은 곧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뜻이 있고 기개가 살아있는 선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예양의 말 중에 국사로서 대접하니 최고의 선비로 보답해야 한다는 말과,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예뻐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 화장을 한다는 말은 오늘날까지 최고의 명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이 비록 한 사람의 자객에 불과한 예양을 절개를 지킨 선비로 만들어 기록으로 남겨 놓은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의리와 지조 그리고 기개를 기리기 위해서이다.

     

    인류의 역사가 지속 되는 한 남녀를 통틀어서 남성은 남성의 능력을, 여성은 여성의 외모를 인정해 주는 것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전통 유교 사회의 주군에 대한 충성을 논할 때 맹목적으로 주군에게 복종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공자만 해도 춘추시대에 여러 나라의 임금에게 돌아다니며 유세를 통하여 벼슬을 구 하였다. 이 경우의 충성은 일방적 관계가 아닌 쌍방적 호혜와 계약의 관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쌍방적 호혜와 계약의 관계지만 그 속에서 싹튼 미덕과 아름다움을 이야기로만 들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오늘날은 싸구려 지도자, 가식적인 사람들의 협잡이 더 돋보이는 세상이다. 그래서 예양은 영원히 우리 머리와 가슴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춘풍 다 보내고

    나뭇잎이 진 추운 계절에 네 홀로 피였느냐?

    아마도 매서운 서릿발에 높은 절개를 지키는 것은 너뿐인가 보구나."

     

    강직한 성품으로 바른 말을 잘하여 여러 번 파직 당했던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이정보가 지은 ‘국화야 너는 어이’라는 시이다. 

     

    그의 절개는 대쪽이요 지조는 국화 같았던 선비였다. 보름달과 함께 그런 선비나 예양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디 나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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