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광장] 80년대 지방행정의 고단함 기억해 주길

기사입력 2023.10.23 07:05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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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홍순 논설위원.

    [천안신문] 1980년대 초 고향 읍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후 군청 시청 시설공단에서 총 39년을 근무하였기에 추억도 많다. 공직에 들어온 후 행정통계나 각종 지시사항, 참고사항 등을 매일 꼼꼼하게 행정수첩에 기록해 왔다.

     

    80년대 서기 주사보로 근무할 때 행정수첩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물론 천안의 일면이지만 대동소이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요즘 공직자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용어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남기지 않으면 모두 잊혀질 것이기에 몇 가지만 적어본다.

     

    82년 1월의 기록에 군수 연두순시 준비 읍장 지시사항으로 읍청사진입로 모래준비, 유리창 청소, 이발·면도·복장 단정, 논 짚단정리, 도로변 가드레일 청소 등이 기록되어 있다.

     

    86년 9월에는 내무무장관 시정방침으로 “국민을 하늘같이 알고, 국민을 하늘같이 두려워하며, 국민을 하늘같이 모신다.”라는 좋은 말도 있다.

     

    86년 11월 군수 지시사항으로 추곡수매 1등, 농토배양 조기 완료, 인구증가 억제, 위민실 철저 운영, 고추대 뽑기, 87년 1월에는 당 숙직 철저, 출퇴근엄수, 무단이석 금지, 도박 근절, 건전활동 전개 등 이중 도박 근절, 인구증가 억제에 있어 만감이 교체한다.

     

    87년 3월에는 매주 금요일 청소의 날, 도로변 비닐수거, 조롱박심기, 꽃호박 심기, 도로변 꽃길 조성, 등기소 유치, 의원 내각책임제 홍보, 독립기념관 개관 참석자 인솔 준비 등이 있고

     

    88년 5월에는 6공화국 국정지표 숙지, 공직기강 확립, 무사안일 지양, 올림픽 대비 질서 확립, 신뢰 화합 밝은사회 조성, 범국민 서울올림픽 참여운동 전개, 지방도변 꽃묘식재·제초작업, 고속도변 지붕도색 등이 있었다.

     

    88년 11월에는 추심경 추진, 마을 노변정화, 체납세금 일소, 동향보고 철저, 고추수매·추곡수매·산불조심·반상회 철저, 쥐잡기 지도 등 지금은 그리운 추억의 행정용어들이다.

     

    80년 초 지방공무원들이 일선에서 추진했던 범 국가적 시책으로 요즘은 질타를 받는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인구폭발을 막자는 취지로 2000년대 이후 인구가 감소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당시엔 생각하지 못했다. 

     

    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둘도 많다!” “하나 낳아 알뜰살뜰”, “축복 속에 자녀 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 등 인구폭발 대비 당시 정관수술 난관수술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할당했다.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강제적 통일벼 보급도 있었다. 이때 나온 말로 소속입건(小束立乾 벤 벼를 세워 말리기), 소주밀식(小株密植 벼를 총총히 심기), 생고시용(生藁施用 추수가 끝난 논에 볏짚을 썰어 놓고 쟁기로 가는 거), 추경(가을 논갈이), 춘경(이모작 위한 봄 논갈이), 건답직파(마른논에 볍씨를 뿌림), 퇴비증산(지력 향상을 위한 퇴비증산 경쟁적 실시), 피사리(논에 난 피 공무원들이 뽑아주기), 벼 베기(도로변 논 횃불 들고 공무원들이 벼 베어주기) 등 요즘은 들어보지 못하는 생소한 말들이다.

     

    70~80년대 지방행정을 조장행정 종합행정이라 했다. 공직자들이 주민들을 이끌었다. 60~70대 공무원들만이 알 수 있는 그리운 행정용어로 필자도 업무노트를 넘기면서 다시금 추억에 젖어본다.

     

    특히 조장행정의 대표격으로 인구억제, 산림녹화, 식량증산 등 대통령부터 장관 도지사 군수까지 국정 제일 과제로 추진하여 전국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이행을 강도 높게 채근하는 등 인구억제 실책을 제외하고는 오늘의 푸르고 배부름을 이루게 된 것으로 본다.

     

    식량자급자족 사례로 그 당시 밥맛 좋은 아끼바리(추청벼)를 대부분 선호하였기에 통일벼를 꺼리는 게 농촌의 당연한 풍토로 씻나락(볍씨)을 통일벼로 하고 있나 마을별 담당공무원으로 하여금 확인토록 하여 아끼바리(추청)의 경우 발로 뒤엎고 다니기도 했다.

     

    마을 도로포장, 하수구 설치, 화장실 개량, 하천 보설치 등은 관에서 시멘트만 대주고 인력을 마을 주민들이 나서는 부역(무보수 공짜일)으로 해결하였다.

     

    매월 1일 15일은 새마을 대청소의 날이었다. 새벽 6시면 이장이 앰프를 틀어 사람들을 깨웠다. 우리 세대 공직자들은 그때 새마을 노래를 하도 많이 들어 지금도 기억한다. 

     

    1.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3.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이처럼 70년대 80년대 공직자들은 막일꾼으로 자칭 머슴처럼 낮 시간대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며 뛰고 밤이 되어야 사무실로 와서 밀린 잡무를 처리했다.

     

    공직자가 걸어 온 길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평가가 남겨진다. 후배 공직자들과 시민들께서는 70~80년대 이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박봉임에도 주민을 위해 오로지 명예만을 먹으며 위민(爲民)의 꽃을 피워온 공직자들을 잊으면 안 된다. 

     

    후배 공직자들도 이러한 선배들의 희생적인 토대속에서 오늘날 일하기 좋은 공직풍토가 조성되었으므로 꼰대라 무시하지 말고 선배들을 공경해야 한다. 손가락질당하지 말고 손뼉 치며 칭찬하는 주민이 많도록 내 자신 더 추스르며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한 점 부끄럼 없도록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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