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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의 활동기반으로서 시민사회의 개념과 시민운동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역사적 실천과정에서 발전하였다. 1968년 5월 운동 이후 1970년대 프랑스에서 공산당과 노동총동맹(CGT)의 노선을 비판하고 새로운 좌파의 길을 모색한 ‘제2의 좌파’(La deuxil me gauche)운동, 같은 시기 독일의 녹색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 1980년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이스 등의 민주화운동, 같은 시기 군부독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운동과 폴란드의 솔리대리티(Solidarity) 자유노조운동에서 시작된 동유럽의 민주화운동 등의 경험들이 모두 시민사회론의 재등장과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복원되는데 직접 간접으로 기여한 역사적 실천들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제3의 물결로서의 민주화 물결과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이제 전 지구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론’은 전위정당의 구성, 민주적 집중제, 폭력을 사용한 국가권력의 장악이라는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건설이라는 구좌파의 혁명모델이 더 이상 사회개혁운동의 모델로 자리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다시금 등장한 이론이다. 이미 스코틀랜드의 퍼거슨을 비롯하여 대륙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서 비롯된 시민사회론이 새로운 상황에서 재검토되고 재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사회론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시민사회의 사회개혁 에너지를 가지고 억압적인 국가의 관료주의와 경제적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의 자본주의를 견제하고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재구성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며 시민사회는 강력한 사회운동이 있을 때 존재한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자기 성찰적이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개인들 사이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보장”하는 것이다. 사회운동은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가치의 선포이며 문화적 지향성에 기초한 창조적 요구 행위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는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시민사회론은 민주주의로의 이행, 심화, 강화를 이해하고 촉진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이며 동시에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이슈를 제기하는 시민운동의 자기 이해를 위한 이론적 자원이기도 하다. 제3세계에서는 '시민사회'가 '민주화' 투쟁을 의미하기도 했다. 폴란드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자유노조 연대는 시민사회 연대전략으로 폴란드가 찾아낸 제3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남미에서는 "억압적인 국가권력에 맞서 투쟁했던 사회영역"을 시민사회라 불렀다. 동시에 시민사회는 "무기력한 정당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독립영역"으로 이해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권위주의 정치를 흔들었던 87년 6월항쟁에서 시민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진 뒤 시민사회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시민사회는 대개 네 가지 정도의 용법을 갖고 있다. 첫 번째 용법은 시민사회는 '민간'이라는 개념으로 쓰인다. '공(public; 국가/정부/지방정부)'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이는 것이다. 두 번째 용법은 '민중 영역'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한국사회를 끌어가는 주도계층을 중산층이라고 보는 개념이 그것이다. 세 번째 용법은 시민사회를 '제3섹터(The Third Sector)'로 보는 것이다. 시민사회를 정치사회(제1섹터), 경제사회(제2섹터)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네 번째 용법은 시민사회를 '시민운동이 전개되는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아주 좁은 용법으로는 '시민단체'를 '시민사회'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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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와 지속가능건축정선용 공학박사지구 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로 대표되는 온실가스의 절반가량이 건축부분에서 배출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건축물은 지구 자원 고갈과 에너지 위기, 지구온난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건축물은 전 세계 자재의 40%를 소모하고, 냉난방과 전기기계 사용 등으로 유럽에서는 전체에너지의 40%, 국내는 약 30%를 소비한다. 또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20% 이상을 방출한다. 건축물의 에너지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고는 지구온난화방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지구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건축물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 지속가능건축은 에너지 효율적, 공동체 지향적 건축을 일컫는다. 1990년대 초반 독일에서 처음 시작해 오스트리아, 체코, 스웨덴 등 동유럽으로 확산됐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house of future (Haus der Zukunft (미래의 집)), 패시브하우스 Passivhaus, Minergie(최소 에너지를 뜻하는 합성어)를 강화한 Minergie-P 등 각 나라 별로 서로의 구별된 발전성향을 추구하려 하지만 그 뿌리가 Passivhaus (Dr. Wolfgang Feist, Passivhaus-Institut Germany)에서 출발한다. 건물의 사용가능한 기간 또는 예상수명기간 동안의 비용을 계산하는 분석방법인 생애 비용분석방법(life-cycle cost analysis)에 의하면 건축초기단계에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초기투자를 적게 한 건물은 건물이나 시스템의 수명기간 동안에 훨씬 높은 비용을 들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이 경제적인 것만 고려하는 것이 현실 이지만 초기 투자비에만 사실 너무 몰두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현상은 앞으로 에너지 값이 올라 갈수록 더욱 심각해 질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오래 전부터 에너지를 포함한 자원절약에 인력절감을 가미한 총 투입자원절약(tangible savings intangible savings)차원에서 건물에너지절약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지속가능 건축의 중요성이 대두 됨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첫째 일반건물 보다 추가공사비가 필요하게 되어 이는 수요자들에 대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의욕이 생기지 않을 수 있으며, 둘째, 분양이나 임대를 위한 타 건물과의 차별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설시장의 분위기, 셋째,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여 적극적인 유인책이 없는 점등 이다. 시장의 문제는 에너지비용의 상승과 이에 따른 유지비용 절약등 차별화로 해결되겠으나 지속가능 건축의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등 제도적 요소들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패시브 하우스는 단열, 기밀, 3중 유리, 열관류기술 등을 통해 열 손실을 줄여 난방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절감하는 혁신적인 지속가능 건축방식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서민과 빈곤층 농촌 지역일수록 고비용의 건축물에너지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에너지 복지(energy welfare)의 관점 또한 강조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고효율건물 이상의 것 즉, 에너지 절감, 재료의 효율적 이용, 생물다양성의 보존, 지역경제와의 연결, 산업사회가 남긴 상처의 치유라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때 비로소 건축에서의 진정한 지속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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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을 넓히자철학이란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혹은 ‘저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부딪히며 옳은 길을 찾는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이것은 무엇인가, 저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곧 이것은 책상이다, 저것은 동물이다 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게 된다. 즉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물어진 것들은 우리의 생각에 의하여 다시 정리되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기존의 것을 뒤엎고 넘어서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장애인복지신문에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 조사한 2011년 16개 시‧도 장애인복지‧인권 비교성적표가 실렸다. 읽어 가던 중 민망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대전이 60.65점으로 최고점을, 충청남도가 42.45점으로 최하위라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소득 및 경제활동’,‘보건 및 자립 지원영역’에서 충청남도가 최저점을 받았다. 특히 ‘장애인 보건 및 자립지원’ 영역이 더 많은 점수 차를 보였는데, 이 부분에는 ‘활동보조서비스 실 인원 비율’, ‘활동보조서비스 평균 급여량’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2008년「장애인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약 33.8%의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은 배우자와 부모였고, 장애당사자가 법적으로 보장한다고 믿었던 활동보조인은 9위, 0.6%였다. 2007년에 시작된 활동보조서비스의 핵심은, 최중증장애인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존중하여 당사자의 일상을 가족이 아닌 사회가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장애인으로서 더 이상 아내가 도망갈 정도로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자녀에게 아무것도 못 해주는 무력한 부모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지난 2005년 경남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처럼 겨울철 하수도 동파에 움직이지 못해 새파란 죽음을 맞이하지 않겠다는 외침에 대한, 이 사회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장애인은 활동보조서비스를 복지서비스권이 아닌 ‘생존권’이라고 부른다. 일어나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며, 사회활동을 꿈꾸기 시작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증의 1급 장애인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최대 시간은 월 180시간이다. 하루로 환산하면 약 6시간으로,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최중증장애인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각 지자체는 추가 시간을 지원하고 있다. 충청남도의 경우도, 월 최대 40시간을 지원해 오고 있는데, 이는 서울, 대구, 인천, 대전, 울산, 경남 등에서 지원하고 있는 추가시간보다는 적은 수준이다. 하지만 충청남도의 경우 이것마저도 연간 12개월이 아닌 10개월만 지원되고 있어, 지역의 많은 중증장애인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2009년 10월 이후 추가 40시간이 종결된 천안에 거주하는 중증장애인 A씨는, 원하지 않았지만 사회활동을 줄여야 했으며, 활동보조인의 역할이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되면서 가족의 사회활동까지 급격히 감소했다. 활동보조인이 오는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일상은 가족이 곁에서 도와줘야했기 때문이다. 도에서는 신규이용자 증가에 따른 예산증가와 독립적인 「장애인활동보조지원에관한법률」제정에 따른 과도기라는 이유로 당장 올해 6월부터 시간을 축소한다고 통보했다. 장애인활동보조 추가지원은 도비 30%, 시비 70%로 구성되어 있는데, 갑자기 충청남도가 추경예산에서 도비의 매칭을 하지 않은 것이다. 도비의 매칭이 없는 사업은 각 시‧군의 자체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신규지원대상자를 늘렸기에 예산이 부족해 추경에 반영치 못했다는 충청남도의 입장은 궁색함을 넘어 생각에 대한 생각의 연민을 갖게 한다. 천안시는 이런 충청남도의 추가지원금 중단에 대해 긴급 대처, 시비 100%의 자부담 예산 1억원을 마련하는 기민성으로 위기를 넘었다. 예산부족으로 아우성치는 현실 속에서도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사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우리가 늘 고민하는 생각에 대한 생각의 편협성이다. 약한 사람에 대한 생존의 문제를 고민하고 그것을 권리로 실천하는 모습, 쉽지 않지만 그것이 너를 살리는 길이라면 생각에 대한 생각을 넓힐 때다. 왜냐면 우리가 가진 이성의 힘은 생각과 사유의 지평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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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학의 전통: 칼리지 시스템과 개인지도영국에는 현재 150여개의 종합대학과 전문대학이 있다. 이들 대학 중에서 옥스퍼드는 최장(最長, 기원은 중세 수도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의 역사와 독특한 교육체계, 즉 ‘칼리지(college)’ 시스템과 ‘개인지도(tutorial)’ 방식으로 영원한 맞수 캠브리지와 함께 영국 엘리트 교육의 상징이다. (‘옥스브리지Oxbridge’로 불리는 두 라이벌 대학의 오랜 학문적 전통에서 보아, 대체적으로 캠브리지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옥스퍼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왔다.) 수백 년 간 수많은 석학들과 역사의 주역들이 거쳐 간 옥스퍼드대학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 중 하나로서 지적 영향력과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옥스퍼드는 뜰(quad)과 초원과 운하canal)의 대학도시이다. 초록정원이 어우러진 중세풍 칼리지와 채플(chapel)과 도서관들, 템스 강(the Thames)과 처웰 강(Cherwell)변에 넓게 펼쳐진 목초지(meadow)와 긴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들, 고목 우거진 숲(grove)길들, 시내(high street)의 자전거와 캡(cab)들, 공원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크리켓 경기와 강가 뱃놀이, 골목 선술집(pub)들은 이 ‘전통’ 도시의 풍광을 물씬 전해 준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상아탑 도시(꿈꾸는 첨탑들dreaming spires)를 거니노라면 정신의 순수한 공기를 호흡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옥소니언(Oxonian 옥스퍼드대학 출신자)으로서 필자의 추억과 긍지가 이 ‘꿈꾸는 첨탑들’의 장면(우편엽서에 담겨진 풍경) 속에 녹아 있다. 줄리안 그린은 <나의 도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옥스퍼드를 사랑해. 왜냐하면 나는 책을 사랑하는데 옥스퍼드는 한 권의 책이거든. 옥스퍼드의 거리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마치 책장을 넘기는 것과도 같지.” 지식의 곡창지대로서, 사실 여기보다 더 높은 IQ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는 없을 것이다. 옥스퍼드는 이렇듯 고전적이고 목가적인 ‘학문의 도시’이고, 대학생활은 전원 속의 삶이다. 옥스퍼드 학생들은 이런 환경(classic Oxford)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격을 수양하고 엘리트 의식을 함양한다. 무엇보다도 고유의 성격을 지닌 독립적인 칼리지들이 느슨하게 연합된 형태인 ‘칼리지 시스템’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칼리지들은 재정 및 운영 자율권과 신입생 선발권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은 입학하면서 대학의 학생이자 특정 칼리지의 구성원(member)이 되고, 칼리지 내에서 기숙생활을 하기 때문에 대학보다는 자신들이 속한 칼리지에 더욱 강한 소속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칼리지에 있는 학생 휴게실(common room)에서 동료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기고, 칼리지 교수(fellow)들과 함께 ‘포멀 홀(formal hall)’에서 식사하며 대화를 나눈다. (초창기 ‘홀Hall'이라고 불렀던 칼리지들이 있는데, ’칼리지College'는 원래 홀에서 공동 생활하는 학생과 펠로들을 지칭했던 것으로 세월이 지남에 따라 차차 의미가 지금과 같이 바뀌었다.) 학생과 교수들이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하는 칼리지 컨셉이 시대가 흐르면서 예전과는 형태가 많이 달라졌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교수들의 식탁(high table)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벼운 토론을 즐긴다. 학생들은 이러한 칼리지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규율과 절제, 매너를 익히고 엘리트로서 성장해 간다. 칼리지는 학생들의 사회활동의 중추일 뿐만 아니라 학업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물론 학업에 있어 대학 측에서 운영하는 학과들이 칼리지 못지않게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학과faculty/department들은 대학 내 40여개 칼리지들처럼 독립된 건물과 자기만의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칼리지가 개인지도와 추억거리를 제공하는 주된 생활공간이라면 대학 내 학과들은 학위과목, 강의, 세미나, 시험을 편성하고 주관하는 곳이다.) 학생들은 특정 학과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특정 분야의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와 관련된 졸업시험(final schools)을 치러야 한다. 이 시험의 형식과 내용을 관장하는 것은 대학의 몫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각자가 택한 전공에 해당하는 학과에서 진행되는 ‘강의(lecture)’보다는 칼리지의 특별 교수법에 의한 ‘개인지도(tutorial)’를 통해서 시험을 대비한다. (학생들은 매주 개인지도 시간을 위해 보고서 과제인 에세이essays를 작성해야 한다.)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학과 강의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권장사항이다. 최근 들어 새로운 시대 요구에 맞추어서 커리큘럼을 개편·확대하는 등 대학의 학과에서 운영하는 강의의 비중이 차츰 높아지고 있지만, 강의는 전반적인 개요만을 소개하고 개인지도를 통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옥스퍼드대학의 중요한 특징이며 오랜 전통이다. 개인지도 중심의 교육방식이라는 옥스퍼드가 지닌 매력이 온라인 교육으로는 대체될 수 없다. 온라인이나 강당 교육을 통해서는 개별적 욕구를 채우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 옥스브리지(Oxbridge)와 같은 ‘개인지도’ 하에 습득한 지식과 생각을 자유롭고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칼리지)에서는 잠재력을 개성 있게 발굴해 내거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나아가 인류사회의 변화를 선도하는 리더를 배양할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 (옥스퍼드는 애틀리·이든·맥밀런·더글러스-흄·윌슨·히스·대처·블레어 등의 20세기 총리Prime Minister 대부분을 배출했다.) 지식생산자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상업주의로 점점 황폐해져 가는 오늘날의 한국의 대학들이 본받아야 할 기준과 나아갈 방향, 즉 교육학적 모델을 옥스퍼드 교육체계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옥스브리지를 모방해서 설립된 미국의 명문 하버드Harvard와 예일Yale처럼 한국의 몇몇 주요 대학들이 최근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는 곳으로서의 캠퍼스 개념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는 옥스브리지 칼리지 시스템, 즉 학업과 거주의 공동체를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학생들이 강의실을 등지고 도서관에서 취업공부에 매달리는 우리 현실에서는 그들이 세계의 문제를 고민할 수 없고, 지도자의 꿈을 가질 수 없다. 한국의 대학들이 ‘옥스퍼드적’인 환경에서 학생들이 기본 소양을 배우고 사회에 필요한 지적 훈련과 전문지식을 습득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려면, 먼저 외형적 발전보다는 내적 혁신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힘을 튼튼히 해줄 수 있고, 역사의 진행을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엘리트들을 길러낼 수 있다. 옥스퍼드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학문의 전당으로 세계적인 지적 영향력과 영국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려 왔다. 그러나 엘리트 교육의 상징인 옥스퍼드대학은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고 있고, 또한 첨단과학 분야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위협받는 기초학문 육성에 고민하고 있다. 보수적 성향을 띠는 칼리지들이 급격한 변화를 거부하여 고루한 전통주의에 쉽게 주저앉는 약점도 있다. 하지만 어떤 형식의 개혁보다도 더 중요한 옥스퍼드의 강점은 칼리지 자신들의 오랜 ‘연속성’을 견지하는 데 있고, 수세기 동안 유지해 온 옥스퍼드의 ‘자율성’은 여전히 그 무엇에 비할 바 없는 매력을 지닌다. (지난 수백 년간 성장을 이룬 대학들은 운영의 자율성을 충분히 부여받은 대학들이고, 20세기 유수의 유럽대학들 중 몰락한 대학은 자율성이 없던 대학들이었다.) 기존 가치관의 변화에도, 세계인들의 옥스퍼드 열기가 식지 않는 것 역시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적 에토스’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옥스퍼드가 학문을 서비스하는 현대적 서비스 대학이라는 점에서 전통과 현대가 좀 더 유익한 방식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중세(12세기) 이후 지금까지 그랬듯이 옥스퍼드는 시대적 현실을 극복하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키며 면면히 이어져 갈 것이다. 옥스퍼드 칼리지들은 거주공간으로서 학생들에게 항상 휴식과 영감의 장소가 되어 준다. 마치 시골 별장에라도 온듯하게 눈앞으로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펼쳐지는 칼리지 안뜰(front quad)에서 필자는 햇살을 즐기거나 명상에 빠지곤 했다. (헨리 제임스가 “나의 일생이 하나의 커다란 영국식 옛 정원이었고 끝없이 계속되는 영국의 오후 한때였다는 행복한 믿음 속에서 영원히 그 잔디 위에 누워 있고 싶다”고 했듯이...) 그리고 말할 수 없이 아늑하고 평온한,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빅토리아풍의 칼리지 도서관에서 학위 논문(국제정치사)을 썼다. 매 학기말, 저녁식사 후 칼리지 홀(hall)에서 학생과 펠로들이 함께 즐기는 작은 클래식 콘서트처럼 필자에게 옥스퍼드 시절은 항상 ‘가장 고전(classic) 같은 시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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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Call잊혀져 가는 6.25전쟁에서 천안7.8전투의 역사가 있었다. 북한 인민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속전속결 전략으로 물밀 듯이 3.8선을 넘어 내려 밀어붙여왔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국군은 오로지 온 몸 바쳐 육탄으로 북한 인민군 탱크와 맞서 싸워야했다. 어이없이 3일 만에 서울을 침략군에 빼앗기고 한강을 넘어 남쪽으로 밀려 날 수밖에 없었다. 유엔은 북한의 남침 도발을 북한 공산당의 침략전쟁으로 규탄하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결의를 한다.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육군 제24사단 제21연대, 제34연대가 부산항에 도착 즉시 열차편으로 이동하여 오산전투에서 북한 인민군과 접전한다. 제21연대 스미스 기동부대는 북한 인민군의 전력을 오판하여 제대로 전투하지 못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인민군과 피난민을 식별할 수 없었고 일본에서 가져 온 무기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이어서 평택전투에 투입된 제34연대도 제21연대가 퇴각하는 전황을 보고 전투의욕이 떨어졌다. 무선 연락도 어렵고 유선 연락도 불가능하여 작전명령이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연락할 유선을 인민군들이 절단하고 심지어 피난민들이 전화선을 끊어 피난 보따리를 묶는 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평택, 안성 방어 진지를 사수하지 못하고 작전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후퇴한 제 34연대는 천안시내에서 완전 포위되었다. 후퇴 책임으로 해임된 연대장의 후임으로 부임한 로버트 마틴대령은 즉시 포위된 전우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지휘하면서 몸소 전장에 뛰어 들었다. 도리티 고개 포병으로부터 대포 지원 포격을 받으면서 조명탄 불빛아래 철수 퇴각 작전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7월 8일 저녁 마틴대령은 구성동 길가에서 인민군 탱크를 발견하자 맞서 박격포를 발포했다. 후에 포로 된 하사의 증언으로 마틴대령이 발포한 포탄은 탱크에 명중하여 폭발했고, 마틴대령은 현장에서 탱크가 발사한 포탄을 맞고 어처구니 없이 산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밤늦게 제34연대 병력은 129명 전사자를 천안시내 구성동 길가에 묻고 구성동 길을 지나 도리티 고개를 넘어 전의 쪽으로 퇴각했다. 어처구니없는 천안7.8전투를 6.25전쟁사에 아-이런 전투로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도리티 고개를 넘지 못하고 구성동 길가에 피와 살을 뿌리고 마틴연대장과 129명 전우들은 천안 심장에 무덤하고 영원히 잠들었다. 구성동 길가 동산에 유난히 아카시아 꽃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고 5월이면 전몰미군 129명의 순정과 우정의 짙은 꽃향기를 품어 내곤 한다. 그들의 이름은 그들 부모와 가족들의 가슴을 무덤하여 아픔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천안 심장에 영원히 잠든 천안7.8전몰 미국 젊은 영웅들 129명 이름을 불러본다. 우리들은 결코 그들의 이름을 잊을 수 없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당신들이 흘린 피와 눈물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 준 용감한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Let,s Call the Roll ! ROBERT R. MARTIN. CHARLES R. BETSWORTH. MORGAN L.DOWNS. EDWARD R. MCGRATH. ALBERT G. AUTRY. HERMAN L.DRISKELL. THOMAS A. CAMMARANO. EDWARD E.ESTES. CECIL R. CLASS. ERNEST R. ODELL. HARRY REITZ W. SR. PAUL P. STRAWSER. EDWARD M. MORRISON. LEONARD L.PIERCE. KENNETH SHADRACK. BOONE SEEGERS. NORMAN R. CARNES. JOSE JEMANTE. ELLIS HICKS. CHARLES E. LEE. CARLIE A. WINE. JOHN MARRUSO. CHARLES D. PITRE JR. EDMUND VARNER. HARLEND ARMOUR. LOUIE CHOFF. ROBERT L. CRANE. ROVERT E. GEDNEY. HAROLD W. GUSTAFSON. GEORGE H HUTTO. MORRIS F. NAULT. SUSUMYU SHINAGAWA. KENNETH L. SKINNER. MARTIN J. TULIO. LEO S. VOGEN. FRANK P. MARTINEZ. WALTER D. MCNARY. JACKIE L. MURDOCK. JOHN F. MURPHY. ALBERT L. VERCOLEN. WACLAW A. THOMASZEWSKI. ALVIN H. LACA. LUTHER RUTTER. CHARLES W. ADAMS. JAMES W. CHADRICK. LADEY JENNINGS JR. CAROL R. MYERS. BAS IL VARNEY JR. MORRIS AMOS. U. W. BROWNING. JOHN L. CONFER. LEONARD D. HALLUM. PAUL E. HOOTS. GEORGE E. KELLY. JOSE C. LOPEZ. MICHELO A. MACINO. WILLIAM T. MADDIX. JACKSON T. MAYS. JOHN J. MCDONNELL. RECTOR R. MCNAIR. PAUL MITCHEM. BUENAVENTURA E. ORIBIO. GLENN L. PRATT. LEE B. REED. EDWARD J. REITER. ALBERT E. ROSE. JAY RYE. JOHN R. STOVALL. WILLIAM C. SWEITZER. WILLIAM T. WADDIX. ROBERT L. BREWSTER. CECIL ESTRADA. KENNETH FIELDS. EVERET FREEMAN. JIM GIPSON. NORMAN J. GRESSENS. CHARLES C. HUNT. WILLIAM H. JONES. J. P. CHAN. KIM. WILLIE L. KINGSLEY. ROBERT E. LEE. EUGENE T. MANDIK. CECIL MARCUS. BEUFORD MCCOMAS. CECIL J. MCCREARY. CHARLES T. MCINTYRE. J ANIES R. MELLINGER. KENNETH J. RICHRODE. EARL RODRIQUEZ. TSUGIO SAITO. WILLIAM STANSBURY. CHARLES TYLER. RAYMOND ROGERS. HARRY W. SMITH. GEORGE TORHAN. JOSEPH S. VEVERAKA. PAUL VILLA. HARRY C. RODECAPE. VAGANKA ANDREW. ANDERSON PERRY A. BARBOUR ROBERT L. BENNETT WILLIAM A. BLUE ADELBERT. BROWN WILLIAM E JR. CLARK JESSE F. SR. COOPER DAVID QUINT. EMERY DONALD L. FALLS GEORGE A. FREDERIKSEN RALPH R. HAMILTON MERLIN JACK. HARTMAN DAVID RAYMON. HOFFMAN WILLIAM B. HOLMAN CLARK L. HRISTOPULOS CLAYTON. JOHNSON DEWITT WILLIAM. KACAR STANLEY J. KADLEC RICHARD A. KRAHEL JOSEPH P. LEE RAYBURN D. LOTT KENNETH H. MASON WALTER J. MAULDIN CHARLES R. MILEY GEORGE R. MOORE WAYNE T. MURPHY MICHAEL D. PARENTI GLENDON J. ROSA HECTOR P. THORNTON CORDUS H. TUTTLE FREDERICK H. Let's go together. Come join us. 구성동 마틴의 거리 빗돌 위에 작은 조약돌 하나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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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영재)교육과 선행학습 중독에서 벗어나라이 세상 모든 부모는 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어 한다. 또한 많은 부모들의 눈에는 자신의 아이가 남달리 영특하게 보인다. 그래서 열성 부모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가만 두지를 못한다. 영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제대로 걷기도 전에 외국어(영어)를 비롯하여 음악과 미술 등의 개인지도를 시작하고,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는 각종 사교육을 시킨다. 이러다 보니 아이를 기르는 게 일종의 제품 개발처럼 변질되고 있는 우리 현실이다. 마치 조련하는 듯한 교육방식이 자녀 사랑의 표현 중 하나이지만, 부모가 자녀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 아이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갉아먹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자녀 교육을 망칠 수도 있다. 사실 사춘기가 되기까지는 아이의 재능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유치원 연령의 경우 여러 영역의 발달 속도가 달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시켜야 효과적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유아기부터 공부에 시달리게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미취학 아동들(3~6세)은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아이들보다 수영, 미술 등 예체능을 배우는 비중이 훨씬 적고 유아기부터 국어, 영어, 수학 등 ‘학습’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영재반에 들기 위한 사설 학원에서의 심화학습이나 선행학습은 기본이다. 이런 환경에서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개성을 잃고 스스로 새로운 것을 탐구 해나가는 지적 호기심의 싹을 틔우지 못한 채 자란다. 자녀가 참된 재능을 발견하도록 돕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이다. 하지만 아이를 들볶으며 좀 더 깨치게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의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더 떨어진다. 학습은 자연적 호기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정 과목만을 강조하고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거나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문제만 푸는 현재의 (사)교육 문화 속에서는 영재가 나올 수 없다. ‘학원의 선행학습은 학교 진도 나갈 때 좀 더 효과 있어’,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라 선행학습이 꼭 필요해’, ‘영어 교육은 빠를수록 좋고 외국어 습득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대’ 등 일찍 가르치면 똑똑해질 거라는 부모들의 잘못된 육아 가치관과 통념이 문제다.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하여 유추해보면, 강제된 조기교육 또는 선행학습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아이의 정서적 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뿐더러 학업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아동심리학자들은 어린 아이들은 발달단계마다 강조하고 키워줘야 할 발달과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기마다 부모는 아이의 발달특성을 고려해 이에 맞는 양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주위에 영유아기 아동의 조기교육에 대한 의존할 가치가 없는 양육법과 정보들이 수두룩하다. 조기학습에 대한 강조는 이를 요구하는 극성 부모들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요즘 유아기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면 커서도 똑똑하다는 믿음에 조기 독서 열풍이 불면서 어린 아이들이 책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이 시기에 영재교육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동화책을 많이 읽게 하면 아이의 시력이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가 있고, 더 나아가 ‘유사자폐’가 될 위험이 있다. 글을 통해 추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즉 읽기 기능이 원숙해지는 독서 시기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라고 한다. 실제로 핀란드, 독일 등 유럽의 교육 선진국에서는 유치원에서 문자 교육이 금지돼 있다. 이를 위반할 시 처벌을 받을 만큼 엄격하다. 기본적인 인지능력도 떨어지고 아직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학령전 아이들에게 글자나 숫자를 주입하는 것은 정서 발달에도 안 좋고 교육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유아에게 ‘이미 만들어진 자극’을 주는 양육과 교육 태도는 아이의 주도성과 창의성을 위축하는 행위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과도한 조기교육을 시키면 두뇌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 단계별로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 정상적으로 성장한다고 앞서 언급했듯 최근 한 아동의학자도 연구 발표에서 “특정한 뇌기능은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달하며, 적절한 자극은 뇌기능 발달을 돕지만 과도하고 장기적인 자극은 뇌기능을 오히려 손상시킨다”고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만 0~3세에는 감정과 정서 발달이, 전두엽이 빠르게 발달하는 3~6세에는 인간성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며, 두정엽과 측두엽의 발달 속도가 빠른 만 6~12세에 언어교육을 해도 된다”고 한다. 그는 “우리들은 아이들의 뇌가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과도한 조기교육을 하고 있다”며 “가느다란 전선에 과도한 전류를 흘려보내면 과부하가 걸려 불이 일어나게 되는 것처럼 과도한 조기교육은 각종 정신 질환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아기의 과잉 조기(영재)교육이나 초등기의 무분별한 선행학습은 몰개성적이고 자유의지를 꺾는 것으로 현재 심각한 수준이다. 부실한 공교육도 문제지만, 어린 자녀들을 일찍부터 교육시장에 내몰고 있는 부모들도 아이들의 꿈과 소망을 빼앗는 공범이다. 아이의 감정, 본능, 흥미, 자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부모가 과도한 경쟁을 의식한 나머지 아이를 무리하게 학습 위주로 끌어가고 있다. 줏대 없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다들 그런다고 해서 조기교육이 어린 자녀의 지능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너무 과하면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더 클 수 있다. 말했듯, 아이의 지능지수를 높이고자 강제하는 조기학습은 아이의 창의성을 저해하고 흥미유발을 조기에 짓밟을 수 있다. 더욱이 한창 신나게 놀고 행복해야할 어린 나이에 ‘학습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증상과 자신감 저하 등 심한 정서장애로 병원을 찾는 아동들이 급증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이들은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보다 많은 것을 보고자하고 알고자 하며 생각하고자 한다. 이럼에도 많은 부모들이 점점 더 자녀들의 자연적 성장과 정상적인 학습능력의 발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유아교육학자는 “부모들은 유아가 보이는 관심이나 유아발달을 적기 교육연령보다 보통 더 빠르게 인식하고 있어 유아발달과 적절한 유아교육에 대해 부모들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사실, 한 개인의 성장은 서둘러서 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래 기다려주는 ‘인내심’이다. 공부를 채근하거나 시키는 대신 아이가 ‘하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어야 한다. 부모의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언젠가는 우리 아이를 먼 지적탐험의 길을 떠나도록 인도할 것이다. 진정 아이를 위하는 길은 지금 당장의 높은 학업성취가 아니라 평생의 꿈과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만드는 배려이다. 자녀가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개성을 가진 창의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유아기에는 지적 발달을 강제하기보다는 인성(人性)을 키우는 공간(유치원)을 마련해 주고 일상의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독립된 개체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 초등시기에는 성적 위주의 공부가 아닌 책을 폭넓게 읽게 하여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탐색의 여유’를 허락해야 한다. 즉, 자신이 누구이며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를 아이 스스로 깨닫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다. 아이를 지켜보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권위를 내세우며 통제하기보다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의욕이나 흥미를 유발하려는 ‘격려’가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조력(助力)하는 것이다. 존 홀트(J. Hol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교사가 아닌 정원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원사가 꽃나무의 꽃을 피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순히 꽃이 피도록 가꿔줄 뿐이며 꽃나무는 저절로 자란다. 아이들의 마음도 꽃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가 나무에 잎이나 꽃을 붙여 자라게 할 수 없듯이 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것을 집어넣어서 그들을 자라게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그들의 자라는 마음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취하면서 잘 자랄 것이라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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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명물 호도(胡桃) 열매호도는 겉모양새가 복숭아 같이 생겼다하여 중국에서도 북방의 이민족인 오랑캐(胡)봉숭아(桃)로 알려져 왔다. 호도(胡桃)는 호두나무, 학명은 오리엔탈리스(Orientalis)의 열매이다. 호두나무가 처음 발생한 곳이 고려 페르시아지방이라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 지금 이란지역에서 발생한 호두나무는 인도, 태국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국 땅에서 수종을 이루었다. 일본 땅으로 유입된 서양종과 만나 토양과 기후 환경에 적응하면서 오늘의 광덕호두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호두나무는 땅이 깊고, 따뜻한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안 광덕과 경북 영덕 달산에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광덕 호두나무의 역사를 알려주는 400년 나이된 호두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호두나무는 목재가 굳고 비틀지 않아 가구를 만드는데 쓰인다고 한다. 호두열매는 자양분이 많고 저장이 오래될 수 있어서 웰빙식품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다. 한방에서는 호도육(肉), 호도인(仁)이라 하여 진해 자양강장제로 사용하기도 했고, 동상, 옴 등의 피부염의 처방제로 쓰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천안의 광덕 호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기록의 유래는 1918년 8월 28일 매일신보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도내용은 장려 유망한 천안호도라는 제목으로 충청남도 지방특산물로 지정되어 장려를 지도하는 담당 기사의 평가를 보도한 기사이다. “이왕부터 광덕호도는 갓이 엷고 속살이 두터워 품질이 좋다. 외지인들이 맛을 알기 시작하여 용도가 점점 늘어간다. 언제부터 심기 시작했는지 호도단지가 되었는지는 문자로 기록이 없다. 양반집 울타리에 가까운 곳에서만 심어져 가꾸고 있다. 경성방면 상인들이 선매하고 있다”는 보도이다. 그리고 1927년 8월 25일 동아일보는 맛과 자양분 풍부하기로 유일무이라 상찬 받고 있다. 성가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고등요리에는 불가무의 애용품으로 다대한 환영을 받고 있다. 1934년 11월 18일자 조선중앙일보는 충남 명산의 호도는 장래 미국 수출가능성이 있어 농가 부업으로 2만본 증식하여 천안, 공주, 아산 일대에 장려한다고 보도되고 있다. 오늘날 천안명물 호두과자는 이때에 등장한 일본인들 과자이다. 천안 호두나무 열매 호도는 껍질이 단단하나 속은 자양분이 많고 달고 부드러워서 옛글에 성현(聖賢)의 품성에 견주어져 전해온다. 外剛樸內柔甘(외강박내유감) 質似古賢(질사고현) 겉이 강하고 질박하며 속내는 부드럽고 달은 성질이 옛 성현의 품성과 같다는 뜻인 줄 안다. 천안의 명물 광덕호도는 천안 광덕의 토양과 기후, 환경 그리고 광덕사람들의 정서를 머금고, 오늘 천안 사람들의 시대정신으로 승화되고 있다. 천안시는 천안지역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천안호도의 명품화를 위해 특허청에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을 제18호로 등록하여 장려 보호하고 있다. 단체표장에 등록되므로 천안명물 호두 상표 사용권에 대한 천안지역의 독점된 권리를 갖게 된다. 천안호도는 다른 지역에 대해 천안명물 호두 이름에 걸맞게 품질의 우월성과 차별성을 인정받게 된다. 천안호도의 명성과 품질 특성화를 연구 개발하는 전문장인 천안호도 명가(名家)를 발굴 배출하여 천안 명물의 호도의 전통을 오래 전승해야 한다. 천안호도 농가(農家), 명문가(名門家), 천안호도 명가문(名家門)이 우리시대의 사명을 천안정신으로 승화했으면 좋겠다. 外剛樸內柔甘(외강박내유감) 質似天安品性(질사천안품성) 겉이 강하고 질박하며 속내는 부드럽고 달은 성질이 천안품성과 같다. 살맛나는 天安 삶의 질이 세계적인 글로벌 품성 천안(天安)으로 창조해야하는 사명이 우리시대 천안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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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나무 단상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아카시아 꽃노래 말이 있는 동요이다. 초여름 5월은 아카시아 꽃향기로 절정을 이룬다. 하늘을 보고 아카시아의 꽃을 보고 그 맑은 꽃향기 공기를 깊게 들어 마셔 볼 때 마음의 문은 확 트이고 만다.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그윽함이 가슴속에 꽉 찬다. 젊은 가슴이 환희의 감격으로 터질 것 같은 계절 5월의 여왕은 아카시아 꽃필 무렵이다. 천안아카시아 나무는 천안보통학교, 천안제일학교, 가장 역사가 오래된 천안 일 번지 학교인 천안초등학교 운동장에 여러 그루가 있었다. 옛 국민학교 시절 제일 아련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정경은 아카시아 꽃과 나무 그늘이었다. 5월이면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흐드러지게 핀 제일학교운동장 안은 아카시아 흰 꽃으로 가득하고 그윽한 꽃향기가 온 학교에 펴져 싱그러웠다. 수 십 년 된 천안의 고목 아카시아 꽃나무는 해가 지나면서 그렇게 짙었던 꽃향기가 차츰 얕아져 갔다. 수많은 졸업생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고 늙어 가면서도 아카시아 나무는 늘 늙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졸업생들이 늙어 지듯이 아카시아 나무도 세월 따라 거목이 노목이 되어 그 큰 나뭇가지를 지탱해내기 힘겨워 했다. 높은 가지들이 부러지고 꽃향기도 꽃도 줄어 들어갔다. 여러 그루였던 아카시아 나무는 어느덧 몇 그루만 운동장을 지키고 있었다. 학생들과 학교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싱그러웠던 그늘이 차츰 불안한 고목이 되었다. 아카시아나무 그늘은 가을운동회 날이면 학생들에게 좋은 휴식 공간이 되었고 운동하는 선수들에게는 땀을 식히는 안식처가 됐었다. 5월의 꽃향기가 그리워지는 추억들을 많이 간직해 온 아카시아 나무 그늘 이었다. 학교 나이가 100년이 됐으니 아카시아 나무도 그 나이 다 되었다. 그 여이 높은 가지가 부러져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학교에는 교육청 허가를 받아 모두 베어 버리었다. 한동안 많은 졸업생들이 아쉬운 나머지 학교에 항의도 하고 푸념도 했다. 어린 시절 옛 추억으로 마지막 남아있는 학교 상징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아카시아 꽃향기와 그늘이 되 버렸다. 세월은 이렇게 전설로 묻어 버리고 지나가고 있다. 총동창회에서는 100년을 기념하여 옛날을 상기할 수 있는 몇 그루 아카시아 나무를 학교 울타리에 이식해 놓았다. 언젠가는 그 옛날만큼 자라면 졸업생들에게 다시 위로감을 조금이나마 줄 수 있겠다. 언젠가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다 천안 고향을 방문한 선배께서 천안제일학교 아카시아나무와 천안농고 가시 없는 아카시아 나무를 보고 싶다고 했다. 이미 베어지고 옛 모습은 없어 아쉬움이지만 지난 이야기 속에 옛 고향 추억은 천안삼거리 능수버들 그리고 학교의 추억은 아카시아나무와 함께 살아나게 된다. 아카시아는 원명이 아까시 또는 아카시인데 아카시아로 불려졌다. 원산지는 미국 등 동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렐리아 중심 열대와 온대지역에 50여종이 있다. 학명은 Acacia이다. 아카시아는 장미목 콩과에 속한 낙엽교목이고 꽃은 황색, 흰색 꽃잎은 5개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이다. 입지 적응이 뛰어나 황폐지와 척박지에서도 성장이 왕성해 산림을 조기에 녹화하고 황폐지 복구에 좋았다. 아카시아 특징은 뿌리가 아주 강하게 땅 속으로 깊게 뻗어 산사태 예방을 위한 조림에 뛰어나고, 예전부터 나무 목재가 강인하고 잘 썩지 않는 성질이 있어 철도침목, 말뚝 그리고 배 만드는데 이용됐다. 일제시대 때 사방조립용으로 도입하여 식목했던 이야기와 선교사들이 황폐한 산에 사방조림 및 연료림으로 조림했다는 설이 있다. 잎은 가축의 사료로 줄기와 가지는 연료로 이용됐고 번식력이 좋고 아무데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산불, 산사태, 수해가 난 후 심으면 자연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카시아나무에는 거의 모두가 가지에 가시가 나 있다. 가시가 없는 개량종도 있다. 이 가시는 껍질이 변해서 가시로 된 것이다. 가지가 변해서 된 가지 가시 보다는 껍질가시는 날카롭지 않아 손으로 누를 때 똑똑 잘 떨어진다. 지금도 야산에 흠벅지게 핀 아카시아 꽃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 주위에 많이 번식하여 우리들과 친숙해저 이제는 우리나라의 나무 같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아카시아나무를 많이 심은 나라로 손꼽을 수 있다. 짙은 향기가 눈길을 잡아끌리는 곳에는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산허리를 그득하게 채워 푸짐하게 피어 있는 아카시아 꽃향기는 사랑하는 여인내 몸 향수 냄새인 듯 옛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언젠가는 천안초등학교 운동장 한 뜰에 기념 이식해 놓은 아카시아 나무에서 꽃향기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아카시아 한 웅큼 따서 한입 가득 채워 먹든 추억도 이제는 늙어 저 희미해지고 있다. 아카시아 꽃에서는 꿀이 흐른다. 그래서 비트리(BeeTree) 꿀벌나무라는 별명도 있다. 아카시아 꽃꿀이 그렇게 건강식품으로 인기는 좋다지만 아카시아 나무는 버려진 나무인가 점점 줄어 든 다는 소식이 있다. 그나마 아카시아 꽃이 금년에도 또 피었나 보다 벌써 먼 산에서 향기가 풍겨 오는 듯하다. 천안시내 동네마다 뒷산 곳곳에 푸짐하게 피어 있는 아카시아 꽃향기는 그윽한 추억의 향기이다. 꽃은 져도 향기는 남아 있다. 아카시아 꽃말은 아름다운 우정과 청순한 마음의 사랑을 뜻하고 있다. 아카시아 꽃향기를 사랑한다. 천안의 향기는 아카시아 꽃향기였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우정과 청순한 사랑의 아카시아 꽃향기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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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지구와 살벌한 물 다툼지난 3월 22일은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었다. 날로 심각해지는 물 부족이나 수질오염 문제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UN이 1993년에 제정했다. 한국은 1994년부터 물의 날을 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구 표면의 약 70%를 차지하는 물중 바닷물과 극지방의 얼음, 만년설 등을 제하면 안전한 식수나 생활용수로 활용할 수 있는 담수자원(강, 호수 등)은 전체 물의 0.65% 정도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인구증가,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수자원이 고갈되면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더욱 감소하는 추세이다. 한국의 경우, 물 부족 정도를 평가하는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 2003)에 의하면 1인당 연간 이용 가능한 담수량이 세계 153개 국가 중 129번째인 1453m³이다. 영국 생태환경 및 수문학센터(CEH 2002)가 만든 물 빈곤지수(WPI: Water Poverty Index)에서도 한국은 147개국 중 43위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국 중에서는 20위를 차지하는 등 물 부족 국가 대열에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물 부족 문제는 이제 일부 지역 및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전 지구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물 값이 원유가격 만큼 상승할 가능성이 현실화 될 수도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2009)은 ‘1970년대에 석유파동(oil shock)이 있었다면 이제는 물 파동(water shock)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산유국이 카르텔을 형성해 석유자원을 무기화했듯이 수자원 부국(富國)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지역 강국이 ‘힘의 논리’를 앞세워 물 활용에 주도권을 쥐려 할 것이다. 이로 인해, 생명의 원천이며 에너지인 물을 둘러싼 국제분쟁이 빈발할 조짐이다. 2008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미래회의와 UN밀레니엄프로젝트에서는 10년 내 나일강 요르단강 인더스강 등에서 물로 인한 갈등이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두 나라 이상에 걸쳐 흐르는 강은 전 세계 263개로, 지난 반세 기 동안 이 강물 활용과 관련해 체결된 국제 조약 400여건 가운데 37건에서 소규모 전쟁 등 무력 사용이 개입됐다.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국가 간 이해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미 젖줄인 강의 수자원 배분을 놓고 지구촌 곳곳에서 살벌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1967년 이스라엘과 인접 아랍국들 간에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은 시리아가 (이스라엘의 주 상수원인 골란 고원의) 요르단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려던 계획이 주요 발단이었다. 최근 들어 인더스강과 메콩강 상류에 위치한 인도와 중국이 각각 새로운 댐 건설을 추진하자 강 하류 국가들이 이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면서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물 문제로 해묵은 견해차가 폭발해 또 다시 유혈충돌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현재 메콩강 상부인 윈난(雲南)성 지역에 3개의 댐을 운영하고 있으며, 2개의 댐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12년 완공 예정인 ‘세계 최고 높이(292m) 샤오완(小灣)댐 하나만 가동돼도 동남아 모든 댐들의 담수량을 합한 것보다 많기 때문에 메콩강 하류의 수량과 유속, 수질, 생태 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를 냈다. 상류의 댐 건설로 강물 유입이 줄어들면서 메콩강에 의지해 살아가는 5개국 6000만 명이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메콩강을 공유하는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있다. 중국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흘러나가는 이리강과 이르티시강에서도 일부 물길을 돌려 유전도시 카라마이에 물을 공급하거나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이웃 카자흐스탄이 물 부족을 겪고 있다. 인도 또한 동북부 힌두스탄 평원을 가로지르는 갠지스강의 흐름을 바꿔 가뭄에 시달리는 자국 내에 흐르게 할 계획으로, 강 하류에 있어 직접 물 부족 피해를 입게 되는 방글라데시의 항의에는 귀를 막고 있다. 적도 부근에서 발원해 10개국에 걸쳐 약 6.671km를 흘러 지중해로 이어지는 나일강은 이집트가 힘으로 강물을 독점하려고 한다. 지역 강국인 이집트는 1950년대 나일강을 공유하는 수단과 전쟁 직전까지 가면서 아스완댐을 밀어붙였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막은 넓어져가고 대륙의 호수들은 말라가고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지역은 만성적인 물 부족에다 정치적 불안정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나일강, 니제르강, 볼타강, 잠베지강 등 아프리카의 주요 강 유역은 사실상 모두 분쟁지역이다. 부족한 물 배분을 놓고 국가뿐 아니라 개인이나 부족 사이에 소규모 다툼도 빈발하고, 머지않아 아프리카 곳곳에서 수자원 확보 쟁탈로 폭력적인 충돌이 발생해 사망자가 매년 수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사막지대를 관통하는 시르다리야강 상류의 타지크스탄이 작년 수력발전소 수십 개를 건설하면서 물을 가둬 강 하류 우즈베키스탄 농가가 비상이 걸렸다. 구소련 시절 이웃인 두 지역은 물과 가스를 맞교환했다. 하지만 최근 석유와 가스 값이 치솟으면서 우즈베키스탄은 타지크스탄에 에너지 지원을 끊고 가스를 다른 나라에 제값을 받고 팔고 있다. 그러자 타지크스탄과 키르기스탄은 시르디리야강 상류에 댐과 저수지를 만들며 맞대응에 나섰다. 그 결과 하류는 죽음의 강으로 변하고, 큰 호수였던 아랄해(Aral Sea)는 강물 유입이 급감하면서 바닥이 드러나 2개의 호수로 쪼개졌다. 수자원 다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 가운데 사람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호수나 강의 물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위생적인 수자원은 그 양이 더 적다. 강도가 세지는 자연재해(폭풍, 한파, 폭설, 태풍, 폭우, 홍수, 가뭄 등), 즉 ‘기상이변’의 급증은 물 부족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극지방과 주요 고산지대의 빙하 고갈, 삼각주 지역의 해수면 상승, 열대우림지대의 산림훼손으로 인한 황폐화는 바로 물 위기로 직결된다. 확대되는 환경재앙은 생태계 파괴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난민(climate refugee)’과 심각한 식량 생산 문제를 야기한다. 지중해 연안 유럽 국가들도 온난화로 여름철 혹서 기간이 길어지면서 물 부족이 심해 시름이 커지고 있다. UN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2007년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지구 기온이 1도만 올라도 전 세계 인구 중 최소 4억 명, 최대 17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기상기구(WMO 2008) 발표에 따르면 세계인구의 13%인 9억 명이 안전한 식수 없이 고통 받고 있다. 20년 후에는 지구촌 주민의 절반이 극심한 물 부족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 쇼크(shock)’는 지구촌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가뭄 등 자연재해 요인 못지않게 힘의 논리에 의한 정치적 요인이 인류가 당면한 물 문제를 악화시킨다. 주로 상류지역 강국들이 댐을 세우고 물 공급을 줄여 하류지역 국가들이 타격을 입는데서 비롯한다. 아프리카, 중동 지역 등 제3세계에서는 정치 사회적 불안요소가 물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서 수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물 다툼’으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피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은 2009년 다보스 포럼에서 “경제가 성장할수록 세계는 더 큰 갈증을 느낄 것이고, 물을 둘러싼 분쟁도 더 많아질 것”이라며 “물이 부족한 곳에서 총이 득세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 분쟁을 새로운 쟁점으로 제기하면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강에는 물 대신 핏물이 흐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물 위기는 전 지구적 차원의 협력과 ‘정치적 대타협(political concordat)’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물은 인류 공동의 자원이므로 국제공조가 필수다. 수자원 안보가 글로벌 에젠다에서 진정 우선순위로 다뤄져야 하며, 북반구 선진국들은 가뭄과 사막화라는 위급 상황에 처한 아프리카 지역 등 남반구의 수자원 빈국(貧國)들이 물을 자력으로 확보하고 수질오염에서 벗어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제는 행동에 나설 때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긴박한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분별한 개발과 탐욕으로 심화되고 있는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실질적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된다면 그 어떤 대책으로도 예견되는 수자원 대재앙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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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교육(맘)에 대한 단상새 학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3년 전 이맘때,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며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초조했었다. 아이가 드디어 학교에 입학했다는 뿌듯함과 감격도 잠시, 학부모가 됐다는 중압감이 다가왔던 것이다. 심성이 몹시 여린 아이가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친구와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많은 게 걱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고, 이젠 스스로를 챙길 줄 아는 대견스러운 4학년으로 성장했다. 학부모가 되면서 사교육이라는 시류(時流)에 편승하지 않고 험난한 교육 전장(戰場)을 뚫고 나갈 수 있을 지, 내심 염려가 되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대전 둔산)에서 살다보니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사교육 유혹도 많았다. 치열한 경쟁 풍토 속에서 다른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가정학습과 공교육만으로 아이를 기르겠다는 다짐을 견지하고 있다. ‘자습(自習)’을 유도하며,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학습효과가 훨씬 더 높다’는 확고한 믿음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를 특별하고 귀하게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유독 강하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학습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특히 엄마)들은 유아기부터 조기교육을 받게 하거나 외국어(영어)를 비롯해 수학, 음악 등 사교육을 시키려 한다. 어린 아이들은 엄마가 붙들고 가르칠 때와 사교육을 시킬 때에는 대체로 ‘혼나는 것이 두려워서 혹은 달콤한 보상을 얻기 위해’ 군말 없이 따른다. 여기에 고무된(부모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착각) 극성 엄마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습 강도를 가중시키고 밤늦게까지 책상에 붙잡아둔다. 방과 후에 학원이나 과외에 매달리는 엄마들이 많다. 사교육열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순 없다. 문제는 아이의 학습 소화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많이 시켜야 한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식의 왜곡된 과잉 교육열이다. 곽 짜인 스케줄대로 엄마가 아이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헬리콥터 교육’은 아이의 발달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마치 양 떼를 우리 속으로 몰 듯 아이의 사고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맞추려는, ‘주체인 아이’의 의지보다는 부모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양육 방식은 아이의 지적 성장에 치명적이다. 아이가 주도적으로 학습을 실행하지 않고, 부모가 일방적으로 짜준 공부계획과 학원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따르면 아이 스스로 공부 목표를 세우거나 조절할 줄 모르고 자신의 학습능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외부에 의한 강제적 자극학습의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엄마들이 조급한 마음에 단기간 집중교육을 시키는 과외나 학원에 아이를 보내 당장 눈앞의 성과(성적)에 집착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사교육의 성적향상효과는 줄어들기 마련이며, 타율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받은 아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 분량이 많아지고 어려워지는 공부에 싫증을 내게 된다. 다시 말해, 사교육에 길들여진 의존적인 아이는 지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해 끈기가 부족하다. 다양한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해 정작 중요한 시기에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쉽게 벽에 부딪친다. 이에 반해,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아이는 느리지만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혼자 힘으로 자연스럽게 원리를 터득한다. 아이가 주도적이 되려면 부모부터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주변 엄마들이 하고 있는 사교육은 상당수가 무익하다. 엄마들 모임에서 얻은 정보대로 여러 학원을 보내면서 아이를 밀어붙인다. 게다가 아이를 축구나 농구교실에 보내기도 한다. 돈을 내고 운동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운동은 겨우 한 시간 시키고 햄버거, 피자 같이 살찌는 간식을 먹이는 것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토요일마다 엄마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아이들이 운동하는 동안 학원, 과외 등 사교육 정보를 주고받는다. 자녀들의 발달 과정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정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그대로 따라하거나 믿는 것이다. 사교육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엄마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이가 제대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게 하려면 부모가 관심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부모의 과잉 교육열은 자녀의 재능 계발에 독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부모의 통제와 관리아래 학습하는 비자율적인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비판적인 사고를 기를 겨를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주의집중력에서 약점을 보이고 부모를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부모의 강권에 밀려 형식적으로 흉내만 낼뿐 스스로 공부에 몰입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모의 관심에서 다소 자유로운 아이가 전체 상황을 살피는 감각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들이 방증한다. 그렇다고 무관심이나 자유방목을 주창하는 건 아니다. 재능을 발견하고 찾는 과정 역시 아이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부모의 과욕과 소위 아이를 ‘잡는’ 지나친 간섭은 아이의 심신을 위축시키고 정서문제를 야기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도 아이도 지쳐서 서로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지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는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려 정서불안에 빠질 것이며 예민한 사춘기를 거치면서 반항심이 표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이가 견디기 힘들어하거나 도움을 호소할 때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공부만 다그치는 것은 위험하다. 요즘 청소년의 잘못된 방향으로의 일탈행위가 심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부모의 과욕은 부모나 아이 모두를 고통 속에 빠트린다. 부모의 그릇된 학업 중심의 가치관과 부모가 아이를 독선적으로 끌고 간 탓이다. 너무나 큰 비효율과 아픔을 초래하는 것으로, 한국의 가족관계에서 비극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 강박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엄마끼리 모임에 기웃거리기보다는 아이 마음을 관찰하고 대화하는 데 열정을 쏟는 게 낫다. 지나친 기대와 비교는 아이의 공부 의욕을 꺾을 수 있기에 금물이다. 아예 공부와 담을 쌓을 수도 있다. 기대가 큰 아이일수록 부담으로 쉽게 상처받고 좌절감이 깊어지며, 다른 아이와 비교를 당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지금 당장의 성적이라는 결과물에 매여 아이를 닦달하는 ‘학부모가 아닌’ 아이의 미래 가능성을 믿는 ‘부모로서’ 인내심과 배려와 격려가 절실하다. 강박 버리고 아이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대화해야 한다. 주변의 눈을 의식하거나 너무 조급해 하지 않고 차분히 아이를 지켜보는 게 좋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자녀의 매니저가 되어 종일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즉각 제공하고 아이의 일상을 통제하는 ‘헬리콥터 맘’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이의 연령, 지능, 적성을 고려하고 현 상태를 잘 살펴 그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에게는 자유와 여유를 주면서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연생태 여행, 문화역사 기행, 둘레길 걷기 등은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 줄뿐만 아니라 학습으로 이어지는 동기 부여가 된다. 공부하는 습관과 기초적인 학력을 튼튼하게 길러주는 데 독서만 한 게 없다. 책을 즐겨 읽게 하면 자기주도학습할 때 더 수월하다. 틈틈이 시간을 내 자녀와 가까운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거나 등산, 운동, 산책 등 여가(취미)활동을 공유하며 공감대를 유지하는, 온 가족이 ‘함께 심호흡’하는 것만큼 건강한 교육 환경은 없다. 자녀를 많은 돈을 들여 키우는 것과 잘 키우는 것은 분명히 구분된다. 학원 등 사교육에 의지하는 수동적 학습법으로는 결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부모의 과잉보호와 과욕, 지나친 사교육이 아이의 정신건강과 정서발달을 해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독립심, 학습의욕 등을 높여주고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일이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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